▶ 인간 영혼의 파수꾼을 찾아서…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의 셰익스피어
영국의 초여름 햇살이 부드러운 밀물처럼 내려앉던 날, 나는 오래전부터 영혼의 지도 속에 숨겨두었던 도시,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발을 디뎠다. 에이번 강은 수백 년 전의 시간을 품은 채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고, 강가의 버드나무는 마치 느린 독백을 하듯 바람에 몸을 흔들고 있었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연극 무대 같았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는 인간의 영혼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우주처럼 그려낸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서 있었다.
1564년, 이 고요한 시골 마을에서 한 소년이 첫 울음을 터뜨렸다. 가죽 상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고결한 귀족의 피를 이어받지도 못했고, 대학의 화려한 상탑 위에서 지식을 논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훗날 인간의 욕망과 사랑, 질투와 권력, 광기와 구원이라는 거친 날것의 감정들을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빚어낸 거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극작가라고 부르지만, 직접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니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복잡한 해부도를 그렸던 외로운 철학자에 더 가까워 보였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셰익스피어의 생가로 향했다.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검은 목재 골조와 오래된 벽, 낮은 천장과 디딜 때마다 삐걱거리는 마루틀은 16세기의 공기를 고스란히 가둬두고 있었다. 낮은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햇빛조차 오래된 연극의 막이 오를 때 켜지는 핀 조명처럼 신비로웠다. 어린 셰익스피어는 이 방에서 창밖 세상을 바라보며 책 속의 박제된 언어가 아닌, 거리의 뜨거운 숨결을 먼저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가장 인간적인 언어로 세계 문학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생가에 숨겨진 작은 정원은 슬프도록 아름다웠다. 피어난 장미와 초록 잔디 위를 스치는 바람 속에서 그가 남긴 낭만적인 희극들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향기로운 꽃향기 속에는 유쾌한 웃음이 묻어 있었지만, 그 끝자락에는 인간의 허무와 삶의 덧없음이 잔잔한 슬픔처럼 배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셰익스피어가 바라본 세계였다. 그는 인간을 선과 악으로 명쾌하게 나누지 않았다. 누구나 욕망 앞에서 흔들리고, 아파하며, 끝내 후회하면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도 숭고한 존재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어 도달한 앤 해서웨이의 코티지는 15세기의 평화가 그대로 멈춰 선 곳이었다. 두터운 초가지붕 아래 자리 잡은 집은 동화의 한 페이지처럼 아늑했다. 청년 셰익스피어가 여덟 살 연상의 여인 앤 해서웨이와 비밀스러운 사랑을 키워가던 호젓한 풍경 앞에 서니, 비로소 그가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으로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그는 역사에 박제된 거장이기 전에, 한 여인을 뜨겁게 사랑하고, 현실에 갈등하며,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다 끝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쓸쓸한 가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푸른 야망은 조용한 시골 마을에만 갇혀 있을 수 없었다. 서른 살 무렵, 그는 거친 기회의 땅 런던으로 향했다. 배우이자 극작가로 살아가며 시대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그가 세운 ‘글로브 극장' 무대 위에서 《햄릿》의 고뇌와 《맥베스》의 야망, 《리어왕》의 비극적인 광기가 사자후처럼 터져 나왔다. 당시 웨스트민스터가 권력이 지배하는 냉혹한 정치의 런던이었다면, 글로브 극장은 인간의 피와 눈물이 흐르는 진짜 삶의 런던이었다. 부두 노동자의 거친 숨결과 귀족의 오만한 시선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셰익스피어는 인간의 본질을 날것 그대로 올려놓고 시대의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재건된 오늘날의 글로브 극장에도 여전히 엘리자베스 시대의 뜨거운 영혼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지붕이 없는 야외 원형 구조, 무대 바로 앞마당에서 서서 보는 입석, 오직 자연광과 바람에 의존하는 스펙터클. 마이크 하나 없이 최소한의 악기로만 채워지는 극장 안에서, 템스강의 눅눅한 바람이 뺨을 스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문학은 도서관의 낡은 책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를 향해 외치는 인간의 거친 목소리 속에서 비로소 살아남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화려했던 런던의 막이 내린 뒤, 말년의 그는 다시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 스트랫퍼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1616년, 52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했던 지상의 연극을 끝마쳤다. 그의 유해는 홀리 트리니티 교회의 차가운 돌바닥 아래 묻혀 있다. “나의 뼈를 움직이는 자, 저주받으리라.” 묘비에 새겨진 그 서슬 퍼런 문장은 마치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주인공의 강렬한 대사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여전히 서늘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어느덧 해질 무렵, 붉게 물드는 에이번 강가를 천천히 걸으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셰익스피어는 단지 글을 쓰는 극작가가 아니었다. 상처 입고 방황하는 인간의 존재를 가장 깊이 위로했던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그의 육신은 사라졌고 그 황금비의 시대는 저물었지만, 인간의 맹목적인 욕망과 애틋한 사랑, 시린 고독과 배신의 아픔은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지치지 않고 반복된다.
그렇기에 그의 연극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고, 배우가 분장을 지우고 떠나갈지라도, 인간이 숨을 쉬고 삶을 살아가는 한 셰익스피어라는 거대한 연극은 매일 아침 우리의 삶 위에서 새로이 막을 올릴 것이다.
스트랫퍼드의 저녁 하늘이 어스름에 잠기는 순간, 나 역시 그의 오래된 질문 하나를 가만히 가슴에 품었다. “To be, or not to be(사느냐 죽느냐).” 어쩌면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고 견뎌내는 것, 우리 삶의 그 모든 궤적 자체가 이미 셰익스피어가 쓰고 싶었던 가장 위대한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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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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