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아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신장내과 교수
▶ 콩팥 기능 떨어져도 초기 단계엔 대부분 증상 없어
▶ 고혈압·당뇨 등 위험요인 있을 땐 정기 점검 필수
▶ 소염진통제 반복 사용, 신기능 저하 위험 키울 수도

[클립아트코리아]
만성 신장질환(콩팥병)은 병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아, 흔히 ‘침묵의 질환’으로 불린다. 몸이 붓거나 피로감이 심해지고 숨찬 증상이 생겨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콩팥 기능이 크게 저하된 경우가 적지 않다. 콩팥은 단순히 소변을 만드는 장기가 아니다.
우리 몸의 노폐물을 걸러내고 수분과 전해질 균형을 맞추며 혈압 조절과 빈혈 예방, 뼈 건강 유지에도 관여한다. 한 번 손상된 콩팥 기능은 회복이 어렵다.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은 고혈압과 당뇨병이다. 혈압이 장기간 높게 유지되면 콩팥의 기본 구조인 사구체의 미세혈관이 지속적인 손상을 입게 된다. 당뇨병에서는 높은 혈당이 혈관 내피세포와 사구체에 대사적 스트레스를 일으킨다. 이러한 손상이 반복되면 콩팥의 여과 장치인 사구체가 딱딱하게 굳고, 노폐물을 걸러내는 여과 능력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만성 콩팥병은 증상이 아닌, 위험요인이 생긴 순간부터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다. 당뇨병 환자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 혈액 검사로 추정 사구체 여과율을, 소변검사로 알부민뇨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알부민뇨는 콩팥의 미세한 손상을 비교적 일찍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다.
고혈압 유병 기간이 길거나 심혈관질환이 있고, 가족 중 콩팥병 환자가 있는 경우에도 정기적인 콩팥 검사가 필요하다. 만성 콩팥병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지만 병이 진행되면 다리나 눈 주위가 붓고, 쉽게 피로해지며, 식욕 저하, 메스꺼움, 피부 가려움, 소변량 변화, 근육 경련, 호흡곤란 등 다양한 전신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 단계는 이미 콩팥 기능이 상당 부분 저하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평소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이라면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 검사가 필수적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약물도 콩팥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이부프로펜, 나프록센, 덱시부프로펜과 같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는 통증과 염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콩팥으로 가는 혈류를 감소시켜 급성 신 손상을 유발하거나 기존 콩팥병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고령, 탈수, 심부전, 간질환 등 위험요인이 있거나 이뇨제, 혈압약을 복용 중인 환자, 이미 콩팥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건강한 성인에서도 이러한 진통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신기능 저하 위험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진통제를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다만 통증이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복용하거나 여러 종류의 진통제를 함께 먹거나 장기간 복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최소 용량을 짧은 기간 사용하되, 반복적인 사용에 앞서 원인을 확인하는 진료가 우선이다. 경우에 따라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약제, 국소 치료, 물리치료 등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콩팥은 심장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심장이 약해져 혈액을 충분히 보내지 못하면 콩팥 기능이 떨어지고, 반대로 콩팥 기능이 나빠지면 몸 안에 수분과 염분이 쌓여 심장 부담이 커진다. 이를 심장-콩팥 증후군이라고 한다. 만성 콩팥병 환자에서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빈혈도 만성 콩팥병에서 흔한 문제다.
빈혈을 단순히 철분 부족으로 여기기 쉬운데, 만성 콩팥병에 의한 빈혈은 조금 다르다. 콩팥은 적혈구 생성을 촉진하는 호르몬인 에리스로포이에틴을 만든다. 콩팥 기능이 떨어지면 이 호르몬이 부족해지고 염증이나 철분 이용 장애가 동반되면서 빈혈이 생긴다. 따라서 철분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필요시 조혈호르몬 치료를 병행한다.
만성 콩팥병 관리의 핵심은 진행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혈압과 혈당을 철저히 관리하고 소금 섭취를 줄이며 금연, 적정 체중 유지, 규칙적인 운동을 실천해야 한다. 진통제, 한약, 건강기능식품을 무분별하게 복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몸에 좋다고 알려진 제품이라도 콩팥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으며, 복용 중인 약물과 상호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에는 혈압과 혈당 조절을 넘어, 단백뇨를 줄이고 콩팥과 심장을 함께 보호하는 치료 전략이 중요해졌다. 알부민뇨가 있을 땐 안지오텐신 전환효소(ACE) 억제제나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같은 약제가 콩팥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뇨병성 콩팥병 등 일부 환자에게는 SGLT-2 억제제 계열 당뇨병 치료제가 콩팥 기능 저하를 늦추고 심부전 위험을 낮추는 치료로 쓰인다.
이러한 약제는 개인의 신기능과 혈압, 칼륨 수치, 동반 질환을 토대로 전문의와 상의해 결정해야 한다. 콩팥을 지키는 데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위험요인에서 시작하는 관리와 꾸준한 생활습관 개선이 중요하다. 이 작은 차이가 평생의 콩팥 건강을 좌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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