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 웰페어 제도를 처음 만든 나라는 1880년대 독일이다. 이 나라 재상이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갈수록 거세지는 사회주의 물결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가 먼저 사회 복지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고 판단, 직장 상해 보험, 의료 보험, 노후 생활 보험 등 전국민을 상대로 한 복지 체제를 마련했다.
그 뒤를 이어 영국은 제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온 국민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적 보호를 베푸는 것을 골자로 한 ‘베버리지 보고서’라는 것을 만들었다. 윌리엄 베버리지가 작성한 이 보고서는 전후 영국 복지 제도를 만드는 발판이 됐다. 모든 국민에게 사실상 무료로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국립 보건 서비스’(NHS)는 이렇게 생긴 것이다.
미국은 대공황이 터지면서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노인 복지 차원에서 1935년 소셜 시큐리티 법을 통과시켰고 1965년에는 존슨의 ‘위대한 사회’ 정책에 따라 노인 의료 프로그램인 메디케어를 시행했다.
그 후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들 프로그램은 모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위기의 원인은 비슷하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의료 비용은 나날이 늘어나는데 이를 충당할 재원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중에서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영국의 NHS다. 한때 모든 국민을 무료로 고쳐줘 전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이 제도는 사실상 파산 상태로 국민들 원성의 표적이 되고 있다. 2024년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NHS에 만족하고 있는 국민은 21%, 불만인 국민은 59%에 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사 한번 보기 위해 장기 웨이팅 리스트에 올라 있는 국민은 전체의 10%인 623만에 달하고 있으며 이중 절반은 한번도 의사를 본 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18주를 기다리면 의사를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기약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돈이 없어 의사를 뽑지는 못하고 무료 서비스를 받으려는 환자는 늘고 그 결과는 한없이 기다림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인들은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최근 발표된 소셜 시큐리티 보고서는 오는 2032년이면 소셜 시큐리티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현행법은 지급액을 자동으로 22% 삭감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이에 노후를 의지하고 이는 7천500만명의 미국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이 지경이 된 이유는 받는 사람의 숫자와 받는 액수는, 받는 기간이 모두 느는데 이를 충당할 세수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 부부가 일하다 은퇴한 중산층 가정의 경우 연 평균 4만4천달러(인플레를 감안한 수치)를 받았다. 지금은 평균 6만 달러를 받는다. 미국 기업 연구소(AEI)에 따르면 2030년대 은퇴할 사람은 자기가 세금으로 낸 돈보다 30%를 더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소셜 시큐리티는 자기가 낸 세금을 정부가 가지고 있다 불려서 돌려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낸 세금은 오래전 은퇴자들이 가져갔고 지금 받는 것은 현재 근로자들이 낸 세금이다. 다시 말해 세월에 따른 축적이 전혀 없이 낸 즉시 사라지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아들 부시가 이를 주식에 투자해 불리자는 아이디어를 내놨으나 공화 민주 양당 모두의 반대로 좌절됐는데 돌이켜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금을 올리거나 혜택을 줄여야 하는데 아무도 감히 이 인기없는 일을 하려 하지 않고 있다.
소셜 시큐리티와 함께 노후 복지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메디케어의 처지도 비슷하다. 최근 나온 메디케어 보고서에 따르면 병원비 보험인 파트 A는 2033년이면 고갈된다. 이렇게 되면 병원비 1달러당 89센트밖에 지급하지 못하게 된다.
외래 환자 진료 비용을 커버하는 메디케어 B(5천840억 달러)는 A(4천440억달러)보다 규모가 크고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도 급속히 늘 것으로 예상된다. 2026년 파트 B 프리미엄은 처음으로 200달러가 넘었으며 향후 10년간 매년 6.6% 상승이 예상된다. 약값에 관한 파트 D 프리미엄은 이보다 빨리 늘 전망이다. B와 D는 자금 조달 방식이 달라 고갈되지는 않지만 수혜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부담은 계속 커질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의료 낭비를 줄이고 재정적 기초를 탄탄히 하는 세제 개혁이 필요한데 아직까지 정치권은 조용하기만 하다. 헤밍웨이는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에서 망하는 일은 “처음에는 서서히, 나중에는 급속히 일어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미국 복지 제도는 서서히 단계는 지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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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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