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0일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케데헌), 요즘 이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케데헌 열풍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악령으로부터 인간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케이팝 걸그룹 헌트릭스는 맨하탄 42가 타임스 스퀘어 대형전광판을 점령했고 클럽, 스포츠 경기장, 마트, 축제마당, 클럽 어디 가나 케데헌의 노래를 떼창하고 춤을 따라 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OST 8곡 모두가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고 케데헌 ‘골든(Golden)’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다. 다들 “케데헌에 나오는 노래가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교회 서머스쿨에서 돌아와 샤워를 하자 마자 타올을 두른 채 9살 꼬마는 “알렉사, 케이팝 데몬 헌터스 골든 송 플리즈!” 하고 외친다. 음악이 나오면 그 밑의 7세, 4세, 기저귀 찬 15개월 아기도 몸을 들썩거리며 춤을 추는데 “UP, UP, UP” 하는 가사가 나오면 손
이민 당국의 무차별적 단속이 점점 더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번주 들어 LA 한인타운 인근 홈디포 앞에서 벌어진 연방 세관국경보호국(CBP)의 단속은 그 방식이 충격적이었다. 이사하거나 짐을 옮길 때 빌려 사용하는 렌트용 트럭을 이용해 이른바 ‘트로이 목마’와 같은 속임수 작전을 쓴 것이다.일감을 구하러 홈디포 앞에 모여 있던 일용직 노동자들을 유인하기 위해 이같은 차량을 동원했는데, 그 트럭의 화물칸에 안에 무장을 한 단속 요원들이 숨어 있다가 노동자들이 모여들자 갑자기 튀어나와 체포 작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민자 커뮤니티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문제는 이 같은 작전이 단순한 단속을 넘어 불법이라는 점이다. 연방법원은 이미 인종, 언어, 직업, 위치만을 근거로 한 이민 당국의 무차별 단속이 위헌이라며 임시 금지명령을 내렸고, 제9 연방항소법원도 1심의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민 당국이 위장 단속이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이민자들을 체포한 것은 법원의 판결을
한국 축구의 살아 있는 전설 손흥민이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MLS) 소속 LAFC에 공식 입단하며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10년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에서 간판스타로 활약한 그는 지난 6일, LAFC와의 계약을 공식화하고 미국 무대 진출을 선언했다. 단순한 이적이 아니다. 아시아 축구의 상징이자 전 세계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한 선수가 새로운 무대에서 ‘전설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가는 역사적 전환점이다.손흥민의 합류는 단지 LAFC 전력 보강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이적은 MLS 전체, 나아가 미국 축구 시장 전반에 미치는 상징적·경제적 파장이 크다. LAFC가 MLS 역대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손흥민을 영입한 사실만 보아도, 그가 가진 상업적 가치와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다. 더구나 미국 내 최대 한인 밀집지역인 LA에서, 그는 단순한 ‘해외파 선수’를 넘어 지역사회와 깊이 호흡하는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손흥민은 유럽 무대에서
1970 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사무엘슨 교수가 행복 공식에 대해 말했다. 그가 말하는 행복 공식은 행복은 소유를 욕망으로 나눈 (행복=소유/욕망) 것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분자인 소유가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분모인 욕망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운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전자에 국한 되어있다. 다시 말해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한다. 물론 소유가 많아지면 행복해 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소유를 증가시킴으로 행복에 이르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우선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을 무한정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인간은 소유하면 소유할 수록 욕망도 커지게 된다. 행복공식이 말하는 것처럼 분모인 욕망은 커지지 않는 가운데 분자인 소유가 늘어나야 행복도 커지게 된다. 하지만
광복절은 빛을 되찾은 날, 즉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자유를 다시 얻은 날이다. 이는 단순한 독립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 문화와 역사를 다시 찾았다는 의미다. 태극기를 흔들며 목 놓아 외쳤던 환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날의 감격은 여든 해를 지난 지금도 가슴 속에 살아 눈 부신 햇살로 터져 나온다.광복의 물결에 힘입어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어머니는 초등학생 때 처음 고국 땅을 밟았다고 한다. 해가 빛을 잃었을 때, 청년 외할아버지는 대한해협을 건너 배움의 길을 택하셨다. 무릎 꿇었던 땅 너머에서 한 줄기 소망을 품은 채 다시 일어나기 위해서였다. 그 시절 우리 말은 입에 재갈을 물린 듯 억압당했고, 이름조차 낯선 문자에 지워졌다.외할아버지는 숙식을 제공하는 테일러 학교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힌 후 동경에서 양복점을 운영했다. 또한 조선 아가씨와 결혼하고 삼 남매를 양육하며 안정된 생활을 꾸려갔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