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를 머금은 나무들이 길 양편에 줄지어 서 있다.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 오크파크는 이름처럼 나무가 많아 동네 입구부터 마음이 풍성해진다. 걷다가 멈춰 선 곳은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초록 잔디를 앞치마처럼 두른 단아한 빅토리아풍 2층 집 옆에는 ‘헤밍웨이의 생가 1899’라는 팻말이 서 있고, 둥근 탑 모양 지붕이 작은 성처럼 붙어 있어 동화 속 집을 보는 듯했다.헤밍웨이의 생가는 외할아버지가 지었으며 3대가 함께 살았다. 아버지 클리렌스는 사냥과 낚시를 즐긴 산부인과 의사였고 어머니는 성악가였다. 어린 헤밍웨이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다섯 살까지 여자아이 옷을 입고 누나와 쌍둥이처럼 자랐는데, 그는 훗날 이 일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세 살 때 낚싯대를, 열 살 때 사냥총을 선물 받아 평생 자연과 모험을 사랑했다. 네 살 무렵에는 새의 라틴어 학명을 250개나 외울 만큼 영민했다.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감성을,
2001년 9월 11일. 지금으로부터 꼭 25년 전이다. 그날 뉴욕에서는 시장을 비롯한 주요 지방공직자를 뽑는 예비선거가 예정돼 있었다. 당시 한인유권자센터에는 투표에 관한 문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전부터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다.월드트레이드센터에 비행기가 충돌했다는 뉴스였다. 처음에는 작은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두 번째 비행기가 다른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 이어 펜타곤도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뉴욕은 순식간에 선거의 도시에서 공포의 도시로 변했다. 그날 예정됐던 뉴욕시 예비선거는 중단됐고, 결국 9월 25일로 연기됐다. 투표를 준비하던 시민들에게는 선거보다 생존이 먼저인 날이 됐다.미국 본토가 외부의 대규모 공격을 받아 수천 명의 목숨을 잃은 충격은 너무나 컸다. 9·11 테러로 모두 2,977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날 이후 미국은 이전과 같은 미국이 아니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이 끝났다. 미국과 소련이 세계를 둘로 나누어 대립하던
나이 쉰다섯에 과수가 된 하동댁이 남편을 산에 묻고 땅을 치며 돌아오니, 여든둘 시어머니가 문에 섰다 하는 말‘밥 도’ - 이종문하동댁이 쉰다섯이라니, 떠난 남편도 환갑 어름일 거라 짐작해 봅니다. 요즘엔 경로 할인도 되지 않는 한창나이지요. 무슨 사연인지 알 수 없으나 세상 여행을 갑자기 마치셨군요. 시어머니는 장지에 가지 않으셨나 봅니다. 참척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이 만류한 걸까요? 하지만 며느리를 맞는 한마디 말로 단박에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밥 줘’도 아닌 ‘밥 도’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시어머니가 ‘밥이 도(道)’라는 걸 새삼 깨우쳐주신 건 아닐까요? 세상의 저편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고, 재난으로 죽어 가는 날에도, 우리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밥 도’라고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요? [시인 반칠환]
아직도 철부지 소년 같은 아들의 나이가 어느덧 입대 적령기(19~20세)에 들어섰다. 여건상 장교·부사관이 아닌 사병 입대가 확실하다. 대한민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이행해야 할 의무이며, 병영 환경과 문화가 내가 경험했던 3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된 것도 잘 안다. 그러나 ‘품 안의 자식’을 내놓는 심정이어서, 일말의 걱정이 있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사정 때문일까. 매년 정례적으로 받아 보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자료에서, 올해는 국방 분야에 그 어느 때보다 눈길이 갔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국방예산이 202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70조 원을 넘어선다. 편성안대로 집행되면, 내년 국내총생산(GDP)의 2.33%가 국방에 투입된다. 70조 원 넘는 예산 가운데 22조7,112억 원이 방위력 개선에 사용되는데 △한국형 전투기 KF-21 양산 △핵추진잠수함 사업 △장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L-SAM 등에 투입된다고 한다. 인공지능(AI) 유·무인 복합체계
“이 길로 가면 돼요.”그는 길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나를 멈짓하게 한다. “어디서 왔어요? 유색인이네요.” 오를 때는 흙길의 발자국을 따라왔지만, 내려가는 길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아침 햇살 화사한 그리피스 산등성이의 네거리, 울창한 나무들이 제각각 손짓한다. 두리번거리던 내가 뛰어오던 낯선 남자에게 길을 물으니, 자신은 중미에서 왔다며 웃는다. 악의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색인’이라는 말은 지금도 내 안의 오래된 심기를 흔든다.언짢은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나를 그냥 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어떤 색으로 읽었다는 사실이 걸렸다. 그것은 악의 있는 말이 아니라도 말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하는 어둠의 평범성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나. 이럴 때면 나는 찝찝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다음 날, 그 말의 무게를 안고 나는 미술관 더 브로드(The Broad)로 갔다. 요코 오노의 “마음의 음악 Music of the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