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많아서 천천히 멀리 가도 지치지 않는통일호는 어디나 서며누구든 내려주고 아무라도 태웠다완행열차를 통일호라고 이름 지은 것은통일은 더디 와도 된다는 걸까자정 너머를 깨워간이역…
[2025-08-19]어느 해 나는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읽었다도서관이 아니라 거리에서책상이 아니라식당에서 등산로에서 영화관에서 노래방에서 찻집에서잡지 같은 사람을소설 같은 사람을시집 같은 사람을한장…
[2025-08-12]태풍이 산을 부수고 지나갔다길이 파묻히고사람의 집들이 쓸려갔다영월군 무릉도원면 운학리 머위밭산초나무 가시 위에 엉성하게 얹힌 새둥지산새 알 하나깨지지 않았다 깨지지 않았다아직 깨…
[2025-08-05]내 안의 사랑은빈집 한 채를 끌어안고 산다수돗가 세숫대야의 물을 받아먹고 살던향나무 한 분이 사랑채 지붕으로 쓰러진 건그대가 떠나간 뒤부터다툇마루에 옹이가 빠져나가고그 안으로 동…
[2025-07-29]매일 아침 꾸지뽕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주워요꾸지뽕 열매는 음력 시월이 다 가도록 가지에 붉게 매달려 있어요오늘 아침에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무 밑에 가 꾸지뽕 열매를 …
[2025-07-22]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지나가 버리고 있다고밥을 먹어야지나는 밥을 먹었다…
[2025-07-15]하늘과 맞닿으려고바다는 수평선을 팽팽히 치고하늘과 맞닿으려고하늘과 한 몸이 되려고한 몸이 되어 출렁거리며먼 바다 혹은 고래를 낳으려고먼 바다를 부르며바다는 하늘 밑으로 몸을 바짝…
[2025-07-08]기차를 타도 흥이 나지 않는다.가는 곳을 묻고자랑을 늘어놓고신세 타령을 하면서사투리가 정다워 근친 같아서먹을 것 마실 것 건네주고건네받으며 푸짐하게 인정을나누고 누리던 풍속이 사…
[2025-07-01]안개 기둥에 휩싸인 채로사랑하는 법을 몰라헤어질까 두려웠던사랑아, 가라남겨진 자의 텅 빈 가슴 할퀴며사랑하는 법을 몰라혼자 견디려고 하던사랑아, 이젠 가라종착역은 너무도 쉬이 오…
[2025-06-24]꽃 뒤에 숨어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인다.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나무와 산과 마을이 서서히 지워지면서새로 드러나는 모양들.눈이 부시다,어두워 오는 해 질 녘.노래가 들…
[2025-06-17]공룡은 운석의 충돌로 사랑했다고 추정된다현재 사랑이 임박한 생물은 5백 종이 넘는다우리 모두 사랑 위기종을 보호합시다어젯밤 우리가 멸종의 말을 속삭이는 장면아주 조심스럽게멸종해,…
[2025-06-10]남자의 고독사를 알린 건 바람이었다마주 보고 살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던무관심이 부른 부패는 한 달이나 진행되었다그의 곁엔벽시계 하나만 걸려 있을 뿐화려했던 전생의 기록은 남아 있…
[2025-06-03]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그 까닭은언덕에 서서내가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밤새언덕에 서서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그 까닭만은 아니다언덕에 서서내가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2025-05-27]날이 흐리다날이 흐려도 녹색 잎들은흐린 허공을 향해 몸을 세운다모멸을 모멸로 갚지 말자치욕을 치욕으로 갚지 말자지난해 늦가을 마디마디를 절단당한가로수 잘린 팔뚝마다천 개의 손과 …
[2025-05-20]밥 대신 소금을 넘기고 싶을 때가 있다밥 먹을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스스로에게 다그치며굵은 소금 한 숟갈입속에 털어 넣고 싶을 때가 있다쓴맛 좀 봐야 한다고내가 나를 손보지 않으면…
[2025-05-13]저 들에 햇살 찬연한 봄을 맞으시게어여 맞으시게아지랑이 몇 마리 잡아먹고 금방 배 아픈 시늉도 하면서민들레 이런 것들에 걸려 넘어져 나 넘어졌네 무르팍이 다 깨졌네피가 나네 엄살…
[2025-05-06]점심 때 지나노부부가 곰탕집으로 들어선다할아버지가햇살 드는 창가 쪽 테이블로 가더니의자를 빼주자 할머니가 당연하다는 듯 앉는다김이 모락거리는 곰탕이 나오고할아버지는 곰탕을 뜨면서…
[2025-04-29]하늘이 깔아 논바람의 여울터에서나속삭이듯 서걱이는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두 놈이 부리를서로의 쭉지에 파묻고따…
[2025-04-22]아버지는 마당에 있는 매화나무를 만져보라 하셨다나무둥치는 밋밋하고 건조했다아버지는 차고 맑은 매화꽃을 좋아하셨지만꽃 피어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았다매화나무도 대부분의 날을 꽃 …
[2025-04-15]산과 들이 만나말했습니다사람들의든든한 바탕이 되어 줍시다그럽시다평화로운 풍경도 되어 주고요‘마을’ 성명진산과 들이 아름다운 결심을 해 주었군요. 과연 그 둘이 만나는 곳마다 마을…
[2025-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