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용‘방식·환경’이 더 중요
▶ 부모가 함께 보고 반응해야
▶ ‘중독·과몰입’ 유도 앱 피해야
▶ ‘읽어주기’ 전자책·PBS 키즈

최근 아동들의 디지털 기기 사용과 관련, 무조건 시간을 제한하는 것보다 ‘굿 스크린 타임’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많이 제시되고 있다. [로이터]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스크린 타임’(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줄이기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온갖 노력이 허사라는 것을 느끼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특히 차량으로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할 경우 자녀 손에 태블릿 PC를 쥐여 주는 것만큼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 습관을 보면서 딜레마에 빠지는 부모가 많다.
잘못된 사용이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디지털 기기만한 ‘보모’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 딜레마의 원인이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의 해답은 반대다. 디지털 기기를 과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올바로 사용하면 가족을 도울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는 접근법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아동 발달 전문가들로 부터 자녀에게 덜 해롭고, 부모에게 죄책감을 덜 주는 활용법을 들어봤다.
■ 사용 시간보다 환경이 중요
생후 첫 두 해는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다. 이 시기 아이의 뇌는 두 배가 아니라 세 배로 커지고, 초당 100만 개의 ‘시냅스’(우리 몸의 신경계가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며, 몸을 움직이게 하는 핵심적인 부위)가 새로 연결된다.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두뇌의 기본 설계도가 이 시기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하루 평균 약 2.5시간을 TV, 태블릿, 스마트폰 앞에서 보낸다. 연구에 따르면 TV 첫 노출 시점은 생후 몇 달에 불과하다.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세 미만 자녀를 둔 부모의 10명 중 6명은 아이가 유튜브를 시청한다고 답했고, 10명 중 8명은 TV를 본다고 했다. 40%는 아이가 자기만의 태블릿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유아 자녀를 둔 부모의 58%가 스크린 접근을 허용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가 일종의 ‘전자 보모’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를 달래고, 부모에게 여유 시간을 제공하며, 교육적 효과까지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다. 특히 돌봄 서비스 접근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전자 보모’의 유혹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의 헤더 커코리안 아동 초기 발달 연구원은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를 쓰게 하느냐 마느냐보다, 아이들을 위한 디지털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라며 “디지털 기기 사용 자체가 문제적인 행동을 만든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조언했다. 스크린 타임보다 사용 방식과 스크린 속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 사용 방식이 스크린의 질 좌우스크린 타임이 언어 발달 지연, 학교 준비도 저하, 집행 기능과 자기조절 능력, 주의력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에 따르면 유아는 성인에 비해 2차원 화면 속 정보를 실제 세계에 적용하는 능력이 성인보다 더 떨어진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디지털 기기만으로는 유아의 언어 학습을 대체할 수 없다. 특히, 생후 12개월 이전에 TV를 보기 시작할 경우 언어 발달 지연 위험이 6배까지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그렇다고 스크린 타임은 무조건 ‘해악’이라는 단편적인 생각은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미소아과학회’(AAP) 산하 ‘소셜미디어 및 청소년 정신건강 센터’ 공동 책임자 제니 라데스키 소아과 전문의는 “아이와 부모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미디어 유형과 아동 중심 설계 방식도 있다”라며 “스크린의 ‘질’은 아이가 무엇을 보느냐, 어떻게 보느냐, 누구와 함께 보느냐, 사용 시간을 기존의 어떤 활동과 대체하느냐에 따라 그 영향이 크게 달라진다”라고 강조했다.
■ 알고리즘 기반 ‘습관 형성’ 앱 경계해야AAP의 스크린 타임에 대한 권고도 관련 연구 흐름에 따라 변하고 있다. 1999년 2세 미만 아동 스크린 노출 전면 금지라는 AAP의 권고는 2016년 근거 부족을 이유로 일부 완화되며, 부모와 함께하는 시청하거나 실시간 영상통화의 긍정적 효과를 인정했다.
2024년 발표된 가장 최근 권고는 스크린 타임의 획일적인 금지나 무조건적인 시간 제한보다 콘텐츠와 맥락이 최우선 요소로 강조됐다. 다만 AAP의 새 지침은 자동재생, 알림, 맞춤 추천 등 알고리즘 기반 ‘중독이나 과몰입 유도’가 적용된 소셜미디어, 게임, 앱을 경계하라고 권고한다. 또, 유아 및 프리스쿨 연령대는 하루 1시간 미만 사용이 권고되고, 18개월 미만은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아동 발달 전문가들은 현재 유통되는 대부분의 디지털 콘텐츠와 앱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학습 능력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이용하도록 설계됐다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아동용으로 사용되는 디지털 제품의 다수는 원래 성인을 대상으로 설계돼, 거의 모든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앱을 계속하게 만드는 장치가 포함된 앱을 써본 경험이 있다.
■ ‘좋은 스크린 타임’의 조건스크린 타임을 줄여야 한다는 과거 지침이 이제 ‘좋은’ 스크린 타임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 아동 교육에 도움이 되는 좋은 스크린 타임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 함께 보고, 함께 반응
스크린 타임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누군가가 함께 있느냐’여부다.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달라진다. 아이가 보고 있는 내용에 대해 말을 건네고, 질문하고, 반응하는 순간 스크린 타임을 통한 학습이 이뤄진다.
헤더 커코리안 아동 발달 연구원은 그 이유를 “아이들은 세상 속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때 가장 잘 배운다”라며 “학습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연구에서는 9개월 또래가 옆에 있기만 해도 터치스크린을 통한 어휘 습득이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나 디지털 그림책은 학습 효과가 더 컸다.
◆ 아이 나이에 맞게 설계
미시간주 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세 아이의 약 60%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부모 통제가 가능한 ‘유튜브 키즈’(YouTube Kids) 이용률은 5.5%에 그쳤다. ‘교육용’을 강조하는 앱 중에서도 아이들을 계속 붙잡아두기 위해 자극적이고 교묘한 보상 체계나 디자인 요소를 포함한 경우도 적지 않다.
반면 TV 쇼 ‘세서미 스트릿’(Sesame Street)은 반복, 멈춤, 질문 유도 등 아이의 반응을 끌어내는 장치를 설계에 포함했다. 의미 있는 주제에 집중하고, 자동재생 같은 습관 형성 기능을 최소화해 학습 효과를 끌어 올리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본 3~4세 아이들은 문자, 숫자, 색깔, 도형, 공간 개념 이해도가 뚜렷이 향상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와 함께 시청한 내용을 이야기한 경우 효과는 훨씬 컸다. 2019년 연구에서 프로그램 시청이 가능한 지역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업 부진 가능성이 14~16%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성인 TV 쇼를 시청한 경우 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 명확한 사용 기준
아무리 질 높은 콘텐츠라도 수면, 신체 활동, 손으로 만지는 탐색, 부모와의 실제 교류를 빼앗는다면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습관적으로 켜 놓은 TV조차 아이 발달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명확한 사용 제한과 공용 공간에서의 활용 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기기는 거실과 같은 공용 공간에 두기, ▲혼자 사용하는 시간 최소화, ▲필요시 부모가 강력히 통제.
■ ‘읽어주기’ 전자책·PBS 키즈 등 온라인 상에서 무료 ‘읽어주기’(Read-Along) 전자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화면에 글자가 표시되고, 음성이 이야기를 읽어주는 방식으로, 어른이 옆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과 유사한 구조다. 이 같은 상호작용 방식은 이야기 이해를 돕지, 방해하지 않는다.
한 부모는 아마존 파이어 태블릿을 구입해 모든 앱을 삭제하고, 도서관 전자책 앱인 ‘리비’(Libby)만 남겼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이는 스스로 책을 빌리고, 부모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 단어와 개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새 제품과 중고 제품의 가격은 50~150달러 선으로, 기타 안드로이드나 애플 기기들도 유사한 기능과 부모 통제 옵션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이 부모가 아이가 태블릿을 마음대로 쓰게 두지는 않았다. 태블릿은 높은 선반 위에 두고 특별한 날이나 긴급 상황에만 꺼내 줬다. 어린이집이 늦게 문을 연 날 아이가 전자책에 빠져 있었고, 장거리 이동 때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태블릿은 매주 조부모와의 영상통화에도 사용됐다. 아동 발달 연구자들에 따르면 이런 ‘디지털 장거리 포옹’은 유아에게 가장 가치 있는 스크린 경험 중 하나로, 관계 형성과 언어 학습에 도움이 된다.
‘PBS 키즈’(PBS Kids)와 같은 영상은 연구 기반 콘텐츠로 오락성과 교육 효과가 검증돼, 많은 아동 교육 전문가들이 추천한다. 자녀 용 앱을 선택할 때에는 비영리기관 ‘커먼센스 미디어’(Common Sense Media·웹사이트 https://www.commonsensemedia.org) 등의 리뷰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커먼센스 미디어는 영화, TV, 도서 등 2만6,000 건 이상의 교육 전문가 리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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