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대부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에 풀칠하기 바쁜 곤궁한 삶을 살았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현저히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18세기 영국에서부터였다. 초기 노동자들은 악조건 속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지만 점차 산업혁명으로 창출된 부가 일반에까지 퍼지면서 이들 삶의 질은 높아졌다.
하고 많은 나라 중에 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일까. 그 직접적 이유는 당시 영국의 기술력이 어느 나라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증기 기관을 비롯한 각종 발명품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이용한 방적기, 기차, 증기선 등이 등장하며 생산 능력을 폭발적으로 늘려 놨다.
그렇다면 영국은 왜 이런 기술력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것은 영국이 가장 먼저 신분제를 철폐하고 개인의 소유권을 보호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소유권 개념은 고대 문명 어디에나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신분 사회였다. 노예에게는 아예 소유권이 없었고 평민도 권력자가 내놓으라면 언제든지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소유권은 별 의미가 없다.
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다. 실정을 거듭하다 돈이 궁해진 존 왕이 마음대로 세금을 거두려 하자 들고 일어난 영주들이 왕이라도 세금을 징수할 때는 영주 회의의 동의를 얻을 것을 요구했고 존이 여기 굴복해 도장을 찍은 것이 마그나 카르타다. 이 영주 회의가 영국 의회의 기원이다.
이를 통해 왕도 법 아래 있다는 원칙이 세워졌고 의회가 생기면서 정치적 발언권을 가진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법 앞의 평등이란 원칙이 가장 먼저 세워진 나라가 된 것이다. 1449년에는 헨리6세가 ‘공개장’(letters patent)을 통해 유리 기술자 존에게 특별한 유리 제조 기술이 있음을 공인하면서 형태가 없는 무형 재산권의 존재도 인정했다. 이것이 지적 재산권의 시작이다.
인간의 절대다수는 자기가 땀 흘린 대가가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다. ‘공유지의 비극’이니 얌체족 ‘프리 라이더 문제’ 등은 그래서 생긴다. 영국에서 지적 재산권을 비롯한 모든 재산이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새로운 기술과 발명품이 쏟아져 나왔다.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법 앞의 평등과 재산권 보장이 필수 조건임을 알 수 있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민족도 대한민국 이전 절대 다수의 삶은 다른 곳과 비슷했다. 농민들은 대지주의 소작인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내라면 내고 내지 않으면 쫓겨나야 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한심한 상태를 단숨에 바꿔 놓은 사건이 있다. 1950년 3월 10일 시행된 ‘농지 개혁법’이다. 이는 정부가 농지를 접수한 후 소작농에게 분배하는 것인데 지주들은 현금 대신 지가증권이란 것을 받았고 농민들은 연 수확량의 30%를 5년만 내면 됐다. 이는 연 소작료보다 적은 액수로 5년만 경작하면 자기 땅이 되는 셈이다.
반면 지가증권은 시가의 반 밖에 쳐주지 않은데다 6.25가 나는 바람에 제대로 지급되지 못하고 그 후 극심한 인플레로 사실상 휴지 비슷하게 돼 버렸다. 결국 부자들이 이를 헐값에 사들인 후 정부가 제값 줄 때까지 기다려 큰 돈을 벌게 됐으며 이는 산업 자금으로 변신한다.
이 ‘농지 개혁법’은 이승만의 작품이다. 그는 중국의 국민당이 압도적인 병력에도 불구하고 농지 개혁을 약속해 농민의 지지를 받은 공산당에 밀리는 것을 보고 이를 하지 않으면 한반도 공산화는 필연이라는 판단에 따라 지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 부쳤다. 농지 개혁 결과 자영농 비율은 1945년 35%에서 1951년 92%로 늘어났다. 이는 수천년간 지속돼 온 지주와 소작농으로 이뤄진 신분 사회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6.25가 터진 후 북한이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내걸고 농민들의 지지를 유도했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북한의 토지는 농민에게 판매 상속권이 없어 대지주는 국가이고 농민은 소작농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농지 개혁이 없었더라면 경제 개발은 고사하고 한반도가 전체가 공산화됐을 가능성이 크다.
그 외에도 이승만은 6.25 와중에 미국과 군사 동맹이 이뤄지지 않으면 휴전에 동의할 수 없다고 고집해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한강의 기적’은 농지 개혁을 통한 신분제 철폐와 한미 동맹이라는 방패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5일 열린 정부 광복 기념 행사에 AI로 만든 독립 운동가 6명을 소개하면서 평생 독립 운동을 하며 초대 임시 정부 대통령이자 건국 후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은 쏙 빼놓았다. 3선 개헌과 장기 집권 등 그가 훗날 저지른 과오와 함께 그가 이룬 업적도 같이 보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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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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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농지 개혁법이 잘한일이었군요. 하지만 깡패들을 동원해 부정선거를 했고 밑에 아첨하는 내시들에 정치를 맡겨 부패의 씨를 만들었고 북괴군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며 수차례 경고했던 미군의 말을 무시하고 오로지 정권 유지에만 급급해 결국 6.25 라는 전쟁을 제대로 막지 못했던 죄는 역시 따지고 넘어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