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코넬대학교의 한 사교클럽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는 것이다. 잔혹한 집단 성폭행이었을까? 아니면 훨씬 더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 즉 현명하지 못한 성적 행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였을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는 이 두 가지 가능성을 구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지난 9월 코넬대학교와 카이 파이 사교클럽 회원 7명 등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에서 ‘제인 도’라는 가명의 한 코넬대 여학생은 자신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사교클럽 건물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소송 내용과 2024년 경찰 발표에 따르면 사교클럽 회원들은 그녀를 끔찍하게 대했으며 단체 채팅방에 그녀에 관한 역겨운 메시지를 올렸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확인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은 그녀가 동의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해 있었는지 여부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성폭행 의혹을 둘러싸고 싸워왔던 것처럼 지금도 이 문제를 놓고 싸우고 있다. 듀크대학교 성폭행 조작 사건, 브렛 M. 캐버노의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 과정에서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가 제기한 의혹, 그리고 #미투 운동을 통해 끝없이 드러난 끔찍한 사건들이 그 예다. 하지만 왜 그런가? 양쪽 모두에게 너무나 명백해 보여야 할 문제를 놓고 합의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한 가지 답은 서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성관계를 외부에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한쪽 또는 양쪽 모두가 술을 마셨거나 약물을 사용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술이나 약물은 사람의 억제력을 떨어뜨리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며 기억을 불분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성적 경험을 진정으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이 지난 뒤 후회가 밀려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논쟁이 이토록 격렬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서로 모순되는 너무 많은 것들을 동시에 믿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관계가 단순하기를 바라며 성폭행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명백한 선이 존재하기를 원한다. 그래야 그 선을 넘는 사람을 향해 “나는 고발한다”라고 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사회화의 영향을 제외하면 남성과 여성은 근본적으로 똑같다고 선언하고 싶어 한다. 양쪽 모두가 동의하기만 했다면 무엇이든 괜찮다고 선언하고 싶어 한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18세 청년들이 이러한 ‘해방의 신학’을 마음껏 실천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어 한다. 그 결과는 예상할 수 있듯 재앙적이다. 우리는 판단력이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경계를 존중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어떠한 경계도 설정하려 하지 않는다.
많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즉각 떠오를 반론이 무엇인지 나는 안다. 바로 ‘동의(consent)’ 자체가 명확한 경계라는 것이다. 동의가 하나의 경계인 것은 분명하며, 때로는 그 경계가 명확하기도 하다. 비명을 지르며 자신을 밀쳐내는 사람에게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하거나, 의식을 잃기 직전의 상태에서 몸을 떨고 있는 사람에게 성적 행위를 강요한다면 그 사람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을 감옥에 보낼 수 있고, 또 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동의라는 것이 종종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완전한 성적 자유와 남녀의 완전한 평등이라는 우리의 신념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명확하지 않다. 두 사람이 모두 극도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관계를 가졌다면--내가 보기에 때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두 사람은 서로를 성폭행한 것인가? 아니면 여성은 명백히 피해자인가?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놓고 보면, 제인 도가 당시 성적 행위에 동의했지만 그 이야기가 캠퍼스에 알려진 뒤 이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범죄 행위가 실제로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녀가 ‘예’라고 말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제인 도가 어떤 여성도 받아서는 안 될 방식으로 취급당했다는 사실만큼은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사교클럽 회원들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어야 했다. 그들이 한 행동은 최소한 수치스러운 침해 행위였다. 그러나 우리가 남자아이들과 남성들에게 그것을 확실히 알게 하고 싶다면, 즉 술을 마시고 케타민을 흡입한 상태에서도 그 교훈을 기억할 만큼 뼛속 깊이 새기게 하고 싶다면, 우리는 “모두가 ‘예’라고 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것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신 서로 모순되는 우리의 충동들을 ‘동의’라는 취약한 틀 속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고 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트라우마와 수치심을 안겨줄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제인 도는 트라우마와 수치심을 겪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성폭행이었다.
이는 형사 책임을 판단하는 데 적용우리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그들이 어떤 것을 원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관한 우리의 다른 많은 생각들에 무언가 잘못된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는 이 방식을 고수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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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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