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뜨거운 여름도 때가 되면 지나간다. 뙤약볕과 싸우면서 힘든 시간을 보낸 농부들에게 선선한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가을은 겹으로 즐거운 계절이었을 것이다. 땀 흘려 얻은 노동의 대가인 알곡이 결실을 맺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가을을 뜻하는 한자 ‘추’가 벼 ‘화’와 불 ‘화’의 결합인 것은 가을은 불을 지펴 햅쌀로 밥을 해먹는 계절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아직도 추수를 뜻하는 ‘Herbst’를 가을이라는 뜻으로 쓰고 영국도 14세기까지 ‘harvest’를 가을이란 의미로 사용했다. 우리말 가을도 원래 ‘거두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영어에서는 ‘fall’이 ‘harvest’를 대치했다. 가을의 다른 특징은 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시들다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낙엽으로 변하는 것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동시에 추락의 계절이다.
사람들은 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때가 되면 떨어져 땅에 묻히는 낙엽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그리 되리라는 상념에 젖지 않았을까. 이런 운명은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추락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공통 현상이다.
크게 보면 모든 존재가 그렇다.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은 태양도 은하계와 은하계 너머의 무수한 별도 마찬가지다. 지난 50억년간 지구를 비추면서 생명체의 에너지원이 되어주었던 태양은 앞으로 수십 억년이 지나면 적색 거성으로 변해 지구를 집어 삼킨 후 백색 왜성으로 쪼그라들어 희미한 빛을 내뿜다 결국 소멸한다.
이는 우주를 지배하는 ‘열역학 제2법칙’의 필연적인 결과다. 이 법칙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도 불리는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엔트로피(무질서)는 반드시 증가하며 모든 뜨거운 것은 식는다는 법칙이다.
개기일식을 이용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원리가 사실임을 입증한 영국의 아더 에딩턴은 이 법칙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 가운데 최상위 법칙”이라며 이에 위배되는 모든 이론은 비참하게 무너질 것이라고 말할 바 있다. 이 법칙이 작동하는 한 온 우주는 궁극적으로 어둡고 차갑게 변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비관에 빠질 필요는 없다. 영국 왕실 천문학자를 역임한 마틴 리스는 ‘단지 여섯 숫자’(Just Six Numbers)라는 책에서 지금 우주를 가능케 한 6개의 숫자가 있다며 이 수치가 조금만 어긋났어도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 여섯 개 숫자는 중력에 대한 전자기력의 비율 N, 원자핵을 한데 묶는 강력의 크기 E, 우주 전체의 무게와 팽창 에너지의 비율, 우주 팽창을 가속화시키는 반중력의 힘, 우주 전체 정지 질량 에너지와 중력의 비율, 차원의 수 등이다.
일례로 N은 10의 36승, 다시 말해 1에 0이 36개나 붙는 숫자인데 여기 0이 조금만 덜 붙어도 지금보다 별의 수명은 대폭 줄어들게 되며 지구상에 생명이 진화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또 현재 E의 수치는 0.007인데 이것이 0.006이나 0.008일 경우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는 핵 융합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다. 핵 융합이 되지 않으면 태양이 빛을 뿜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지구상에 생명체도 존재하지 못한다. 나머지 다른 숫자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처럼 미미한 차이가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수많은 가능한 숫자 가운데 인간 생존이 가능한 극히 적은 수치가 우연의 일치로 주어졌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유신론자들은 이것이 현명한 신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주장하지만 무신론자들은 다른 가설을 제시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사는 우주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우주론’(multiverse)이 그것이다.
다우주론이 등장한 것은 오래 된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는 이런 세계관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고 서양에서는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아낙시멘더가 그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후 원자론자 레우키푸스와 데모크리투스, 에피쿠루스, 루크레티우스가 그 주장을 이어받았고 기독교가 전파된 후에도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진 조르다노 브루노가 이를 주창했다.
물론 이는 가설로 이를 입증할 방법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무한한 우주의 하나라면 6개의 숫자가 인간 생존에 최적화된 우주도 당연히 그의 일부일 것이다.
땅에 떨어진 낙엽은 죽은 것 같지만 퇴비로 변해 내년 봄에 태어날 새싹의 양식이 된다. 가을 뒤에는 모든 것이 죽은 것 같은 겨울이 찾아오지만 땅속에는 내년 봄을 기다리는 생명의 씨가 숨어 있다. 우주가 끝나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우주의 싹이 자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가을을 맞아 해야 할 일은 남은 삶을 어떻게 값있게 살 것인지 사색하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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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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