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두 가지 조류를 타고 있다. 하나는 안보 협력 강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러시아의 위협이 지속되고 미국이 유럽 안보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급진 우파와 주권주의 세력의 부상이다. 한동안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두드러졌던 이 흐름은 이제 독일과 프랑스·영국 등 서유럽 핵심 국가들로 확산하고 있다. 유럽 차원의 안보 결속 강화와 국내 정치의 내셔널리즘이라는 두 조류가 어떻게 부딪힐지 주목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조약 4조의 안보협의 방식과 유사하게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드론 침입이나 사이버 공격 등 하이브리드 위협을 받을 경우 27개 회원국 전체가 소집돼 공동 대응을 논의하는 방안이 올 초부터 제기돼왔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이와 관련해 긴급안보 프로토콜과 유럽안보이사회 창설을 제안했다.
유럽안보이사회는 EU 주요국뿐 아니라 영국·노르웨이·우크라이나·캐나다 등 역외 파트너까지 참여하는 정상급 안보협의체 구상이다. 이와 별도로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캐나다에 EU 최초의 준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23개국이 이미 가입한 나토와의 기능 중첩이나 법적 권한 관계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그럼에도 별도의 유럽 안보협력체 추진은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유럽이 스스로 협의하고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을 갖추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한편 유럽의회에서는 이미 급진 우파와 주권주의 세력이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이 하나의 정파로 통합된 것은 아니지만 국가 주권을 앞세우며 EU의 권한과 개입을 축소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인다. 지난달 독일대안당(AfD)은 작센안할트 주의회 선거에서 43.8%를 득표해 과반 의석에서 불과 3석이 모자랐다.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과 베를린 주의회 선거에서는 각각 38.2%와 16.8%로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독일 기본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하는 정당을 위헌정당으로 규정하고 연방헌법재판소가 해산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어적 민주주의’ 장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당 해산과 같은 극단적인 대응은 민주주의에 역행할 수 있어 기성정당들이 대안당을 연립 정권에 끼워주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주도했던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개혁당이 노동당과 보수당을 위협하는 주요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에서도 국민연합의 핵심 지도자인 마린 르펜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영국·프랑스·독일은 유럽 안보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떠받치는 핵심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의 국내 정치 변화가 유럽 전체의 정책 방향에 미치는 파장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연대를 중시하는 EU의 강화 노선과 주요 유럽 국가에서 확산하는 내셔널리즘 우파 정치는 어떻게 조우할 것인가. 우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둘러싼 갈등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급진 우파 정당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럽 공동의 과제로 보기보다 자국민에게 막대한 재정 부담을 지우는 외부 분쟁으로 보고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한다.
기후변화 대응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급진 우파는 EU의 강력한 환경규제를 브뤼셀의 기술 관료들이 기업과 농민에게 과도한 비용을 떠넘기는 정책이라고 비판해왔다. 가장 큰 변화는 이민정책에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경제 침체와 불평등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이 이민을 일자리 문제뿐 아니라 국가 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반이민 정책이 강화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급진 우파 정당들은 단독 집권보다는 연립정부 참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 과정에서 기성정당들이 이민정책에서 우파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고 급진 우파가 유럽 안보협력에서는 기존 노선과 타협하는 정치적 거래가 나타날 수도 있다. 결국 유럽의 향방은 ‘더 강한 유럽’을 요구하는 대외적 압력과 ‘더 강한 국민국가’를 요구하는 회원국들의 국내 정치가 어디에서 접점을 찾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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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종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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