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대학을 졸업한 뒤 백여 곳에 이력서를 보내고서야 전공을 살린 일자리를 얻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이력서 한 장 한 장 뒤에 쌓였을 밤을 생각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이 짊어진 무게다. 일자리를 얻었다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조직에 들어선 뒤에도 넘어야 할 문턱은 남아 있다.
미국에서 아시아계 인재의 채용과 승진, 리더십 진출을 가로막는 장벽을 ‘대나무 천장(Bamboo Ceiling)’이라 부른다. 인종적 편견과 불평등한 기회는 여전히 그 장벽의 일부다. 그러나 우리를 지켜온 습관이 때로는 그 천장 앞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려는 마음은 귀하다. 다만 그 마음이 지나치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붙들리게 된다. 다른 이의 기대에 맞추는 법을 배우는 동안 자신의 의견은 뒤로 밀리고 만다.
MIT 잭슨 루 등의 연구는 미국에서 같은 아시아계라도 동아시아계가 남아시아계보다 리더 자리에 오르는 비율이 낮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 차이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는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동아시아계의 소통 방식과 미국 조직이 기대하는 리더의 모습 사이에 간극이 있다는 것이다.
조직도 목소리의 크기만으로 리더를 가려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는 역량을 알아볼 책임이 있다. 우리 역시 의사소통 방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맡은 일을 잘해내면 성과가 나를 설명해 주리라 믿지만, 어떤 판단을 내렸고 팀에서 어떤 책임을 졌는지는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말을 꺼내려는 순간, 오래 입어온 갑옷이 몸을 조인다. 남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말을,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온 습관이다. 모른다고 질문하면 무능해 보일까 두렵고, 도움을 청하면 약해 보일까 망설인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답하는 사이, 동료들과 마음을 터놓고 교류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 갑옷은 한때 우리를 지켜주었다. 이민 1세대는 서툰 언어로 낯선 땅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작은 실수도 생계를 흔들 수 있었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기보다 버티는 법부터 배웠다.
그러나 우리가 견뎌온 방식이 자녀에게도 꼭 맞는 것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말해주고 싶다. 겸손하되 뒤로 숨지는 말라고. 리더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되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자신이 이뤄낸 일을 부풀리지도 숨기지도 말고 당당하게 말하라고. 때로는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도움을 청하라고.
그러려면 우리부터 달라져야 한다. 아이의 질문을 버릇없음으로, 다른 선택을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힘들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정도는 견뎌야지”라는 말부터 꺼내지 말고, “힘들었구나” 하고 그 마음을 받아주어야 한다. 부모의 믿음은 아이에게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나는 딸이 일터에서 모르는 것을 묻고, 다른 의견을 말하고, 지친 날에는 지쳤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오래 견뎌온 침묵까지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아이야, 갑옷을 벗어도 괜찮다. 문밖에서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네 목소리를 가두지는 말아라. 나도 이쪽에서 문을 열어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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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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