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명을 들라면 농업이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인류 문명도, 도시 국가도, 문자도, 다른 모든 분야의 기술 혁신도 농업의 발판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처음 농사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만년 전 지금 이라크 북부 지역일 것으로 추산된다. 왜 하필이면 1만년 전이었을까. 기후학자들이 그린란드 얼음층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현생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나온 10만년전부터 1만년 전까지 북반구는 빙하에 뒤덮여 있거나 극심한 기후 변화로 농사가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현 이라크 북부가 농업의 시발점이 된 것은 여기 밀과 보리의 조상인 야생 풀들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과 소의 조상인 야생 동물들도 이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목축이 이 지역에서 시작된 것도 같은 이유다.
농업의 중심은 북쪽에서 점차 남쪽으로 이동했다. 남쪽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등 큰 강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비옥한 토지가 있었지만 이를 활용하려면 홍수로 인한 범람을 막고 수로를 만들어 물을 끌어 올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이 있어야 했다.
처음은 소규모로 시작했겠지만 이렇게 해 보다 많은 식량을 생산하게 된 집단은 점차 그 세력을 늘려 갔고 결국은 도시 국가를 세울 정도로 커졌다. 늘어난 식량과 인력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이를 기록할 장부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문자가 발명됐다.
이를 바탕으로 기원전 3200년경 수메르 인은 지금 이라크 남쪽에 최초의 도시 국가인 우루크를 탄생시켰다. 최초의 도시 국가와 문명, 문자, 대규모 영농, 청동기가 동시에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이 이룬 업적의 일부는 지금까지 우리 생활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주일을 7일로 정한 것인데 이는 천문학에 밝은 수메르 인들이 그들이 볼 때 하늘에서 움직이는 일곱개의 행성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기념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에게 망해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일주일을 7일로 정한 이들의 달력을 받아들였고 이는 그 후 기독교가 수용했으며 로마가 이를 국교로 정하면서 유럽 전체의 달력이 된 후 세계 전체가 이를 채택,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원전 6세기 페르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에게 침공당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이곳은 기원 8세기 회교 아바시드 왕조가 바그다드를 수도로 삼으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가 여기 세운 ‘지혜의 집’은 당시 최첨단 학문과 지식을 총망라한 연구소 겸 도서관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사람이 알 콰리즈미로1차 및 2차 방정식에 관한 해설서인 ‘알 자브르’(완성)란 책을 통해 고등 수학의 기초를 놓았고 ‘인도 숫자로 하는 계산법’이란 책으로 아라비아 숫자로 알려진 인도 숫자를 소개했다. 영어로 ‘대수’를 뜻하는 ‘algebra’는 그가 쓴 책에서, 요즘 날이면 날마다 등장하는 ‘algorithm’은 그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오래 갈 것 같던 이 황금 시대는 1258년 2월 어느 날 갑자기 종말을 맞고 만다. 몽골족의 훌라구 칸이 바람 같이 나타나 주민들을 학살하고 도시는 폐허로 만들었다. 칼리프는 왕족은 피를 흘릴 수 없다는 몽골식 전통에 따라 포대에 넣어진 뒤 말발굽에 밟혀 죽었다.
그 후 오토만 제국과 영국 식민지로 고생하다 독립한 이라크인들은 사담 후세인의 폭정에 시달리다 2003년 미국의 침공을 받는다. 대량 살상 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내건 이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 듯 했으나 무기는 나오지 않고 친 이란계인 시아파와 소수 순니파 간의 내전에다 IS등 테러 조직까지 창궐하면서 미국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든다.
이 전쟁으로 인한 미군 사망자 4천500, 부상자 3만2천, 전투로 인한 이라크인 직접 사망자 15만, 기근 등 기타 사망자 100만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쏟아 부은 돈만 2조 달러, 부상 군인들을 위한 치료비 등 부대 비용 1조 달러 등 3조 달러가 들어갈 전망이다. 이런 희생을 치르고도 성과라고 내세울만한 것은 거의 없다.
지난 달 말 마지막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군함으로써 지난 23년간 계속된 전쟁은 드디어 끝났지만 별 뉴스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열렬히 이 전쟁을 찬양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오래전 참회록을 썼지만 일부는 쥐 죽은 듯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 북 치고 장구 치며 이란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훗날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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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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