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햄버거 가게에 들렀다 뜻밖의 질문을 받았다. 주문을 받던 백인 여학생이 한국어로 내가 한국 사람인지 묻더니 자신도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일상에서 마주친 짧은 대화였지만, 한국어가 한인사회를 넘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어 학습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이 지속적인 학습으로 이어지려면 초급부터 고급까지 한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 환경과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미국 고등학교의 AP 한국어 개설을 추진하는 이유다.
‘AP 한국어 추진위원회’가 미국 고등학교 내 AP 한국어 개설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위원회는 지난달 29일 AP 제도를 주관하는 칼리지보드에 공식 서한을 보내 개설 협의를 요청하고 전국 10만 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추진위원회에는 미주 한국어 교육계를 대표하는 10개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서로 다른 분야와 활동 영역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 온 기관들이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뜻을 모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인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10개 단체가 함께 나선 이번 연대는 의미가 크다. 각 단체가 쌓아 온 경험과 전문성을 모아 AP 한국어 개설의 필요성을 알리고, 칼리지보드와의 협의에서도 공동의 목소리에 힘을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한국어 교육 기반도 꾸준히 넓어지고 있다. LA 한국교육원에 따르면 2026~2027학년도 남가주와 네바다 지역에서 정규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학교는 92개교로, 전년도보다 8개교 늘었다. 올해 새로 한국어반을 개설한 학교 수는 최근 5년간 신규 개설 학교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샌버나디노 카운티에 처음으로 방과후 한국어반이 생겼고, 한국어로 과학을 배우는 이중언어 몰입 프로그램도 도입됐다. 미국 고등학교 정규 한국어반 수강생은 약 1만600명에 달한다. AP 일본어와 중국어가 운영되고 있는 만큼, 한국어 교육의 확대가 고급 과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목 개설 요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이를 가르칠 교사를 양성하는 준비도 필요하다. 추진위원회에는 이미 중·고등학교 교사 60여 명이 참여해 교육과정 개발과 교사 양성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추진위원회가 벌이는 전국 10만 명 서명운동에는 4만 명 이상이 동참했다. 최근 열린 LA 한인축제에서도 봉사자들은 무더위 속에 부스를 지키며 1,000명이 넘는 서명을 받았다. 서명운동이 곧바로 과목 개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어 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넓히려는 노력에 교육계를 넘어 동포사회도 힘을 보태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P 한국어 개설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한국어가 미국의 정규 교육체계 안에서 대학 수준의 과목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인 차세대가 부모 세대의 언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이어갈 길을 넓히는 동시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다양한 학생에게도 고급 학습 기회를 제공한다. AP 한국어 개설은 교육계만의 과제가 아니라 한인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이제 교육계의 노력에 한인사회의 지지와 참여를 더해야 한다. 칼리지보드와의 협의와 교육과정 개발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는 만큼, 추진위원회의 활동이 결실을 맺도록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서명운동에 힘을 보태고 AP 한국어 개설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미주 한국어 교육계가 뜻을 모아 첫걸음을 내디딘 지금, 한인사회도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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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경 사회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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