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 한인 이민사에서 가든그로브는 고향이자 뿌리와 같은 곳이다. 197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한인 이민자들이 이곳에 첫 발을 내디뎠고, 가든그로브 블러바드를 중심으로 활기찬 한인 상권을 일구어냈다.
이 거리에 우뚝 선 ‘코리아타운’ 표지석과 매년 열리던 한인축제는 OC 한인 사회의 상징이자 자부심이었다. 1992년 고 정호영 씨가 시의원에 당선되었을 때만 해도, 가든그로브 한인 사회가 정치·경제적으로 탄탄한 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라는 기대를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정호영 의원의 당선 이후 무려 34년이 흐른 지금, 가든그로브 시의회에는 단 한 명의 한인 시의원도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 2002년 박동우 후보의 출마를 끝으로, 이제는 시의원에 도전하는 한인 후보의 이름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타운을 형성할 만큼 강력한 경제력을 갖추었음에도, 이를 대변할 정치력이 30년 넘게 공백 상태이다.
다가오는 11월 3일 가든그로브 시의원 및 시장 선거 역시 한인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현재 한인타운에 즐비해 있는 선거 홍보물은 온통 타 민족 후보들로 가득차 있다. 반면 인근 부에나팍, 풀러튼, 어바인, 라팔마, 사이프레스 등 다른 오렌지카운티 도시들에서는 역대 최다인 6명의 한인 후보가 출마했다.
가든그로브에서 한인 정치인이 나오기 힘든 구조적 한계는 분명이 있다. 현재 정치 지형은 베트남계와 히스패닉, 백인 유권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인 인구가 줄어들고 타 민족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선거를 통한 자력 당선은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아예 엄두도 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과거 현직 시의원 사임 등으로 인한 보궐 임명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인사회 인사들이 문을 두드렸으나 번번이 무산된 경험은 한인커뮤니티에 ‘어차피 안 된다’는 깊은 체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손을 놓고 가든그로브를 ‘정치적 불모지’로 확정 짓기에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가든그로브시에는 한인 인구는 줄었을 지언정 여전히 OC 한인 상권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한인 자산과 비즈니스가 이곳에 있다. 시 정부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정치인이 없다면, 한인 상권의 권익 보호나 지역 사회의 발언권 확보는 갈수록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한인 사회의 권익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의회에 직접 우리의 대변인을 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시 정부의 각종 자문위원회나 봉사 단체에 한인들의 참여를 늘려 정치적 교두보를 확보해야 한다.
단순한 투표 참여를 넘어 풀뿌리 시민 활동부터 차근차근 영향력을 넓혀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타 민족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을 수 있는 포용력 있는 한인 리더를 키워내는 일도 중요한 과제이다. 그동안 가든그로브 한인 커뮤니티는 이 같은 시도 조차도 해보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가든그로브 코리아타운은 먼 미래에 타 민족 주도의 상권에 흡수되어 그 색깔을 완전히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이제는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차세대 인재를 발굴하고 유관 단체 및 타 민족 커뮤니티와의 전략적 연대를 꾀하는 장기적인 포석이 필요하다.
가든그로브 코리아타운이 과거의 유산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멈춰버린 한인 정치력의 시계를 이제는 다시 돌려세워야 한다. 우리의 뿌리를 지키고 미래 세대에게 당당한 터전을 물려주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아직까지 늦지 않았다. 여전히 가든그로브는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고 있고 오렌지카운티 한인들의 삶의 터전이다. 단지 이민 1세들이 고령화되면서 세대 교체의 시기이다. 가든그로브 시에서 한인 정치력이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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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기 OC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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