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집 출판기념회…20대부터 90대ㆍ이민 1.5세까지 삶과 기억 한 권에
▶ 정동순ㆍ이지영 작가 ‘올해의 작품상’…박보라ㆍ김소희 작가 ‘근면필진상’
워싱턴주에서 독보적인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 권의 문예지가 19번째 결실을 맺었다. 주인공인 <시애틀문학> 제19집이 갖는 의미는 책 한 권이 더해졌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워싱턴주 한인들이 타향에서 살아온 삶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가족과 사람에 대한 기억을 한글로 기록해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는 점에서 이제 <시애틀문학>은 워싱턴 한인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자리잡았다.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시애틀문학회ㆍ회장 박보라)는 지난 26일 우딘빌 브라이트워터 환경교육 커뮤니티센터에서 윤성민 회원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시애틀문학> 제19집 출판기념회를 갖고 한 해 동안 회원들이 가꿔온 문학의 결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눴다.
올해 19집에는 디카시와 시, 디카 수필과 수필, 소설과 아동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실렸다. 20대 초반부터 90대까지, 이민 1세는 물론 1.5세까지 서로 다른 세대와 경험을 가진 문인들이 한 권의 책 안에서 만났다는 점도 특별하다.
박보라 회장은 송편을 찔 때 솔잎을 까는 것에 빗대어 문학의 역할을 설명했다. 솔잎이 송편의 향을 살리고 오래 보존하도록 돕듯 문학도 한 시대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과 정신을 기록해 후세가 그 시대를 이해하도록 하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회원들이 봄에 작품을 모아 책을 만들고 늦여름 받아든 뒤 가을 출판기념회를 갖는 과정을 “한 해의 수확물을 거두어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축사에서는 AI 시대에 인간이 쓰는 글의 가치도 화제가 됐다. 시애틀총영사관 김현석 영사는 “펜은 AI보다 강하다”며 AI가 완벽한 문장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학과 시가 지닌 여백과 부족함, 한 사람이 실제로 살아내며 얻은 경험과 감정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AI가 어떻게 발전하더라도 <시애틀문학> 같은 창작의 기록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며 총영사관에서도 그 맥이 이어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김 영사는 특히 인사말을 하면서 자신이 고등학교부터 좋아했던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 편지’를 직접 손글씨로 써와 낭송하는 정성과 애정을 보여줬다.
<시애틀문학>에 10년 동안 꾸준하게 작품을 발표해온 김소희 시인과 박보라 회장에게는 근면 필진상이 돌아갔다. 김소희 시인은 “글쓰기가 외로운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선ㆍ후배들과 함께해 외롭지 않고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다”며 지난 10년을 돌아봤다.
제19집 ‘올해의 작품상’은 운문 부문에서 동시 <제자리>의 이지영 시인, 산문 부문에서 수필 <인연>의 정동순 수필가가 받았다. 두 수상자는 직접 작품을 낭독하며 글로 읽을 때와는 또 다른 울림을 선사했다.
특히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독자가 읽어주는 작품 소개’였다. 작가가 작품을 완성했다고 문학의 여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만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취지로 마련된 순서였다.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와 <시애틀문학>의 오랜 팬인 김인배 장로는 엄경제 시인의 <사계 연정>을 직접 낭송했다. 김 장로는 작품을 고르는 과정에서도 <시애틀문학>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마음에 들어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며 문인들의 창작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이어 오랫동안 문학회를 후원해온 뉴욕라이프의 김수현씨는 조순애 작가의 수필 <딸도 예뻐지고 싶다>를 낭독했다.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새로 나온 <시애틀문학>을 읽다 마음에 깊이 와닿아 이 작품을 골랐다는 김씨의 설명과 함께 독자의 목소리로 다시 태어난 작품은 참석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베이스인 이사야 형제교회 목사의 축하 노래를 비롯해 지난 1년간의 활동 영상, 작품상 시상과 수상작 낭독, 독자들의 작품 낭송 등이 이어졌다.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고, 다시 그 감동을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는 ‘문학 공동체’의 모습이 그대로 펼쳐졌다.
2007년 이후 매년 이어진 19권의 <시애틀문학>에는 거창한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민 와서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던 시간, 고국에 남겨둔 부모와 친구, 늙어가는 자신과 배우자, 사랑과 이별, 시애틀의 비와 나무 등 평범한 한인들의 삶이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그래서 <시애틀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문학적 성취를 넘어선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가는 워싱턴주 한인들의 생각과 감정을 우리말로 기록하고, 한 세대의 삶을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것. 19년을 이어온 <시애틀문학>이 워싱턴주 한인사회의 ‘위대한 자산’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이유라고 독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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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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