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성대 장로 · 손옥아 권사 부부
▶ 장로성가단 단장·장로연합회 회장 맡아 장로들의 신앙·자질향상 도모

손성대 장로 · 손옥아 권사 부부
▶국가조찬기도회 뉴욕지회장 5년간 맡아 국가·민족위해 기도의 제단
▶손옥아 권사, 권사선교합창단 단장 등 찬양·무용으로 복음전파
전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뉴욕지회장 손성대 장로와 전 뉴욕권사선교합창단 단장 손옥아 권사.
주위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천생배필’이라 입을 모으고, 서로는 가장 든든한 동반자라 자부한다. 이들의 삶은 마치 한 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와도 같다.
하지만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자 “우리는 내세울 게 없는 사람들”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러기를 수차례. 이들 부부의 기사는 설득 끝에 가까스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시시각각 밀려오는 거친 이민사회의 파고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내고 참된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내기까지, 그 여정은 ‘부창부수’라는 네 글자가 지닌 무게와 아름다움을 온 삶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 파주 용주골의 청년, 파란만장한 시대의 물살을 타다.
1941년, 서울, 3남 4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난 손성대 장로의 소년 시절은 격동의 현대사와 맥을 같이한다. 대학1년을 마치고 해병대지원 입대, 참모학교 영어 번역반을 수료한 후 미해병대 고문단에서 파견 근무하며 군 생활을 마치게 된다.
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제대 무렵, 당시 함께 근무하던 한 준위의 추천으로, 경기도 파주 용주골에 주재하던 미 제1기갑사단 인사과 선임하사의 러브콜을 받아 제1기갑사단 헌병대(MP Station)에 통역관으로 채용되면서 부터다. 그곳에서 6년여 동안 근무하며 야학으로 대학공부를 마친 후, 마침내 그는 미지의 땅, 미국으로 이민의 포문을 열게 된다.
그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곳은 펜실베니아. 그곳에서 그는 출석한 미국 교회 Bethany Bible Church의 담임 Maturin목사와 면담할 기회를 가졌다. 그 자리에서 아내 손옥아 권사의 부친인 목사의 사역이 소개된 한국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ine)을 보여주며 자신들이 누구임을 설명했다.
그러자 마침 교회 부속건물에 아래층은 중.고등부 예배실, 2층에는 살림집이 있었는데, 미국교회 목사는 손 장로 가족에게 거기서 살도록 허용해주어 교회에 헌금을 내며 살았다.
그러나 손 장로는 신분문제에 어려움이 있어 미국 온 지 몇 개월만에 미 육군에 자원 입대하게 되었다.
아내와 한 살 된 아들은 교회 머휴린 목사에게 보살펴줄 것을 부탁했고 군대에서는 식품검사관 학교를 수료 후 Fort Hamilton(뉴욕 베리자노 다리 아래 브루클린쪽) Commissary(미군 가족들이 이용하는 슈퍼마켓)에서 검사관으로 일하게 되었다.
군에 입대한지 1년 반 뒤 다시 한국행으로 용산 8th Army에서 식품 검사관으로 근무하고 1년을 채우고 제대하게 되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손성대 장로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제약회사 MSD(Merck & Co.)에 둥지를 틀었다. 제대 군인의 혜택을 누리며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미국에 온 지 15년후인 1986년, 마침내 뉴욕으로 터전을 옮기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그는 맨하탄 Downtown에서 세탁소와 런드러맷을 운영하고, Governor’s Island에 있었던 미해양경비대, Fort Hamilton Army Base, NJ Fort Dix Army Base 등 부대 안 세탁소를 운영하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9.11 테러 사태가 일어나고 다음해인 2002년 세탁 공장을 정리하고 동생이 거주하고 있는 텍사스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144개의 객실을 둔 ‘라마다 인 호텔’과 아파트 비즈니스를 하게 되고, 8년 뒤에 호텔 사업을 동생에게 넘겨주고 2009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그의 행보는 하나님 안에서 ‘섬김과 봉사’의 시작이었다.
2009년 뉴욕으로 돌아온 손성대 장로의 삶은 오직 교계에서의 헌신과 봉사생활로 채워졌다.

[사진1]
■뉴욕장로성가단 단장 (2010년~2014년)
당시 빈약했던 장로성가단에 손성대 장로는 후원 이사회를 조직하고, 성가단의 재정적 자립 기반을 다졌다. 특히 한국 초기 미국 선교사들이 모여 사는 노스캐롤라이나의 블랙 마운틴(Black Mountain)을 성가단원들과 직접 방문해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한국음식으로 대접하고, Linton 선교사의 4대 후손 하이디 린튼의 북한선교(Friends of Korea)에 정기연주회에서 모은 후원금을 전달하였다.
그는 성가단 단장 직을 다시 연임하면서 재임 중 정기연주회를 4회 개최하였으며, 창단 이래 50명이 넘는 단원들이 정기연주회에 참여해 부흥을 이루어 나갔다. 또한 동부문화센터에서 성인들의 영어교육을 담당하며 봉사활동도 계속하였다.
대뉴욕지구한인장로연합회 회장직(2016, 2017)을 맡아 장로들의 신앙성숙과 자질향상을 도모하고, 상호친목과 선교, 구제, 교계의 화평과 부흥을 위해 매월 교회를 순방하고 조찬기도회를 가졌으며, 매년 드리는 다민족선교대회를 통해 뉴욕의 많은 다민족들과 연합하여 복음사역을 열심으로 감당하였다.
또한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과 의견 충돌을 좁히기 위해 목양장로 사역 컨퍼런스를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의 저자 최홍준 목사를 프라미스교회 김남수 목사의 안내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2018년부터는 대뉴욕지구교회협의회 이사장, 평신도 부회장, 감사를 역임하며 교계를 섬겨왔다.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뉴욕지회장(2021년~2026년)
손성대 장로는 국가조찬기도회 뉴욕지회장을 맡아 매년 서울에서 개최되는 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본 행사에 참가해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 국회의원들과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의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뉴욕에서 팬데믹 때도 기도회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연합하여 열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리고 지난 4월, 5년동안 섬기던 국가조찬기도회를 물러났다.
현재는 퀸즈 프라미스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내 ‘이삭선교회’를 이끌며 봉사생활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사진2]
■내조의 여왕, 문화 예술 선교사 손옥아 권사
손 장로의 모든 것이 성공에 도달하기까지, 그 뒤에는 언제나 소리 없는 내조자, 아내 손옥아 권사가 있었다. 남편의 뒤를 이어 손옥아 권사 역시 사역의 일꾼이 되었다.
그는 무용은 물론,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다루었으며, 학교 때 합창단 지휘도 한동안 하였고, 뉴욕에서는 믿음장로교회(PCUSA)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섬겼으며 뉴욕한인장로연합회가 창립되고 피아노 반주자로 참여하며 지금까지 봉사하고 있다.
뉴욕권사선교합창단 6대 단장, 뉴욕크로마하프 연주단(단장 이진아 목사) 초대단장을 맡아 찬양으로, 필그림 선교무용단 초대단장을 맡아 무용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역할을 잘 감당했다.
현재 더 나눔하우스 합창단 지휘자로, 소외된 이웃들과 노숙자들에게 음악을 통한 사랑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또 추수감사절에는 더 나눔하우스 거주자들에게 터키 요리를 몇 년 동안 대접하면서 사랑을 베풀어왔다.

자녀 가족들과 함께 한 손성대 장로와 손옥아 권사
“대 이은 믿음의 가정, 진정한 아메리칸 드림 실현”
■주 안에서 이룬 가화만사성
손성대 장로와 손옥아 권사 부부의 성공적인 결실은 자녀들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입증됐다. 아들은 명문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포담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의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도 다수 편찬했다. 딸은 Gordon Conwell 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로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 목사로 4명의 자녀를 낳아 양육하며, 믿음의 가정을 세워나가고 있다.
“우리가 이룬 아메리칸 드림은 부와 명예보다는 주 안에서 가정이 하나 되고 이웃을 섬길 수 있었다는 바로 그 사실입니다. 남은 인생도 겸허히 주님 주신 사역의 길을 감사함으로 이어가겠습니다.”
삶의 무게를 성실함으로 견뎌내며 온전한 섬김의 길을 걸어온 손성대 장로와 손옥아 권사. 이들의 삶은 물질적 성공을 넘어선 참된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아름다운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들 부부의 삶이 앞으로도 더욱 아름답고 향기롭게 채워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
여주영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