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오래 살다보면 한국 명절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송편을 빚고, 성묘를 다녀오고,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오랜만에 한 상에 둘러앉아 먹는 모습들이 이민 생활 속에서 여전히 특별하게 느껴진다. 추석은 본래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고 감사하는 날이었다. 넉넉해진 곳간과 잘 익은 곡식 앞에서 조상들은 하늘에 감사했고, 그 감사를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오래된 추수의 전통을 들여다보면, 감사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나눔이다.
성경에도 추수와 나눔을 함께 묶어 놓은 대목이 있다. 레위기 19장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너희 땅의 곡식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하여 버려 두라.”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그 기쁜 날에도, 밭의 가장자리만큼은 일부러 남겨 두라는 것이다. 내가 힘들게 고생하여 거두게 된 열매이지만 온전히 다 가져가지 않고, 그 일부를 형편이 어려운 이웃과 이 땅에 정착하지 못한 나그네를 위해 비워 두라는 법이었다. 애써 지은 농사인데도 다 거두지 말라는 이 명령은, 풍요로울수록 오히려 손을 펴야 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단어가 “나그네”다. 낯선 땅에 와서 아직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 언어도 관습도 다른 곳에서 더부살이하듯 지내는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이민자로 이 땅에 건너온 우리에게 유독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신명기 10장은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느니라”고 말한다. 처음 이 땅에 왔을 때 말이 서툴러 겪었던 서러움, 아는 사람 하나 없어 막막했던 밤들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자기 곁의 나그네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룻기에는 이 법이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이야기가 나온다. 모압 여인 룻은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를 따라 낯선 베들레헴 땅에 들어온 이방인이었다. 말도 낯설고 의지할 친척 하나 없던 그녀가 기댈 곳은 밭 주인 보아스가 이 오래된 관습을 따라 남겨 둔 이삭뿐이었다. 보아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꾼들에게 일부러 곡식 몇 줌을 더 흘려 놓으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 인연이 결국 룻에게 새로운 가정과 삶의 자리를 열어 주었다. 누군가 조금씩 남겨 둔 나눔이, 한 사람에게는 삶 전체를 바꾸는 문이 된 셈이다.
올 추석, 우리 밥상에도 저마다의 풍성함이 오를 것이다. 그 풍성함을 가족과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어떨까. 명절에 홀로 지내는 이웃,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마음 붙일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 가족과 멀리 떨어져 명절을 혼자 보내는 유학생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송편 한 접시,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 명절 밥상에 초대하는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밭의 한 모퉁이만큼이나 큰 의미로 다가갈 수 있다.
풍요를 다 가지지 않고 한 모퉁이를 비워 두라는 성경의 가르침이 풍요를 상징하는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 삶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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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재 나성북부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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