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를 들라면 영국이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졌고 지금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 블리는 미국도 영국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이들의 언어인 영어는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모국어고 아프리카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제2 외국어로 사용되며 사실상 만국 공통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어의 특징은 그 풍부한 단어에 있다. 가장 큰 영어 사전에 실린 영어 단어 수는 50만개에 달한다. 프랑스어는 15만, 러시아어는 13만개에 불과하다. 단어가 많다고 무조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한 사물을 보다 정확하고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어는 도대체 어떻게 이처럼 방대한 언어를 갖게 된 것일까.
그것은 복잡한 영국 역사와 직결돼 있다. 영국의 주민들 가운데 처음 역사에 등장한 것은 켈트족이다. 이들도 사실은 소아시아에서 서유럽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간 이주민으로 그 전에는 비커 도기를 쓰는 비커족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켈트족에 밀려 자취를 감췄고 이들의 언어도 사라졌다.
기원 1세기 로마가 영국을 침공하면서 이번에는 켈트족이 하층민으로 밀려났다. 5세기 로마가 망조가 들면서 로마군이 영국에서 철수하자 부족들간 분쟁이 심화되면서 영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 때 부족장중 한 명인 보티겐이 독일 작센과 앙겔른 지방의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불러들였다. 이들의 도움으로 한동안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작센에서 온 색슨족과 앙겔른에서 온 앵글족이 반란을 일으킨다. 앵글로 색슨이란 말은 이때부터 나왔고 우리가 쓰는 영어의 조상도 이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앵글로 색슨에 맞서 로마화 된 원주민 귀족 아르토리우스가 한동안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그가 죽자 영국의 주인은 앵글로 색슨으로 바뀌었다. 이 아르토리우스가 아더 왕 전설의 모델인데 앵글로 색슨에 맞서 싸우던 사람이 이들의 영웅이 된 것은 역설적이다.
한동안 잘 나가던 앵글로 색슨 세상은 9세기 바이킹 침공으로 위기를 맞게 된다. 이들이 세운 네 나라 중 노덤브리아, 이스트 앵글리아, 머시아는 망하고 웨섹스 또한 그 일보직전까지 간다. 그러나 웨섹스의 왕 알프레드는 게릴라전을 펼치며 이들과 싸워 끝내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이 공으로 그에게 영국 왕 중 유일하게 ‘대왕’이란 칭호가 붙여졌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066년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은 자신에게 영국 왕 계승권이 있다며 영국 침공을 개시했다. 헤이스팅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 왕 해럴드 1세가 눈에 화살을 맞고 전사함으로써 윌리엄은 ‘정복자’란 타이틀과 함께 영국의 지배자가 된다.
노르만이 지배 계급이 되면서 그들이 쓰던 프랑스어는 상류층 언어, 앵글로 색슨이 쓰던 영어는 하층민 언어가 됐다. 지금 영어에 같은 물건을 가리키는 두 단어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일례로 ‘sheep/mutton’ ‘ox/beef’ ‘pig/pork’등이 그것인데 ‘mutton’은 양을 뜻하는 프랑스어 ‘mouton’에서 ‘beef’는 소를 뜻하는 ‘boeuf’, ‘pork’는 돼지를 뜻하는 ‘porc’에서 왔다. 원 영어 단어는 동물을, 프랑스 단어는 음식을 뜻하는 것을 보면 앵글로 색슨족 하인이 동물을 잡아 한 요리를 프랑스 출신 귀족들은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노르만의 침략 과정은 ‘바이유 태피스트리’라는 천에 자세히 그려져 있다. 11세기 캔터베리에서 만들어졌으며 220 피트에 달하는 이 태피스트리는 프랑스인이 가장 아끼는 보물 중 하나다. 이것이 어떻게 프랑스 바이유로 옮겨졌는지는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이를 움직일 경우 천 조각이 부서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해외 전시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 작품이 오는 9월 10일부터 내년 7월까지 런던 대영 박물관에 전시된다. 전시 보험금 액수만 10억달러로 이미 올해말까지 표가 매진 상태라고 한다.
이런 험난한 역사 속에 영국의 주민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결과 영어는 어떤 언어보다 풍요로워졌다. 영어 단어의 30%는 라틴어, 30%는 프랑스어, 10%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원래 게르만족의 일파였던 앵글족의 단어는 지금 영어의 30%도 안 된다.
그러나 사용 빈도로 따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 100개의 전부, 다음 100개의 85%가 원래 앵글족의 단어이고 문법 구조도 앵글족의 언어다. 오늘날 영국어가 ‘앵글족의 말’ 잉글리쉬로 불리는 이유다.
영어의 특징은 그 포용성이다. 대영제국 때 인도 커리를 비롯해 수많은 식민지 주민들 언어를 받아들였고 그 후계자인 미국도 카누 등 인디언 말부터 세계 각국의 단어를 수용했다. 영어가 가장 풍요로운 단어를 갖게 된 것은 영국 역사와 포용성 덕으로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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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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