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학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와 함께 시작된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한 사람에 의해 쓰여졌는지에 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두 작품의 주제와 사용된 언어, 세계관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일리아드는 그리스 최고의 전사 아킬레스의 ‘분노’(메니스)에 관한 작품이다. 이 시는 “노래하라,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스의 분노를”로 시작된다. 그리스가 트로이를 정복하기 위해 군대를 보낸 지 10년이 됐지만 별 성과가 없는 가운데 그리스군내 역병이 퍼진다.
그 원인은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폴로 사제의 딸 크리세이스를 포로로 잡은 후 그 아버지가 몸값을 들고 와 돌려줄 것을 간청했는데도 이를 거부하자 아폴로에게 복수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아가멤논은 마지 못해 크리세이스를 풀어주지만 그 대신이 아킬레스의 몫인 포로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갖는다.
이에 분노한 아킬레스는 더 이상 싸우기를 거부하고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게 부탁해 그리스군이 지게 만든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아가멤논이 뇌물을 주며 애원하지만 아킬레스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절친 파트로클루스가 그의 갑옷을 입고 나갔다 헥토르에게 살해당하자 분노한 아킬레스가 전장에 나가 ‘트로이의 방패’ 헥토르(수호자라는 뜻)를 죽임으로써 사실상 트로이를 멸망시킨다.
그러나 이로써 아킬레스의 운명도 결정된다. 그가 이 전쟁에 나가면 불명의 ‘영광’(클레이아)도 얻겠지만 단명으로 끝나리라는 신의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교활함’(멘티스)에 관한 시다. 이 시는 “뮤즈여, 신성한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많이 방황한 재주꾼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다오”로 시작된다. 여기서 ‘재주꾼’은 ‘폴리트로포스’의 번역으로 ‘방향 전환이 빠른’ ‘재주가 많은’ 등의 뜻을 품고 있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아우토리쿠스(외로운 늑대)로 당대에 사기와 도둑질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오디세우스의 재능은 그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분명하다.
일리아드에는 아킬레스가 오디세우스를 앞에 두고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인간은 지옥문처럼 증오한다’고 말하지만 이 능력이 없었더라면 그가 트로이를 멸망시키고 10년간 마녀와 괴물, 온갖 역경과 싸우며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도, 돌아와서 자기 자식을 죽이고 집을 차지하려는 무리들을 제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리아드가 아킬레스의 ‘영광’에 대한 시라면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의 ‘귀향’(노스토스)에 관한 시다. ‘노스토스’의 ‘노스’에는 ‘정신’ ‘지혜로움’이라는 뜻이 들어 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혜로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직하고 용맹하지만 분노 조절 능력이 없는 아킬레스는 일찍 죽고 참을성과 끈기, 거짓말과 임기응변에 강한 오디세우스는 살아남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이 두 시에서 나타나는 영웅의 모습은 도덕과는 무관하며 강자가 약자를 죽이고 물건과 여자를 강탈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지켜야 할 법이 있다. ‘제니아’가 그것이다. 이는 ‘주인과 손님 관계’로 번역되는데 주인은 손님이 찾아오면 먹을 것과 잠자리를 내줘야 하고 손님은 주인의 물건과 여자를 해치지 않으며 대접에 상응하는 선물을 줘야 한다는 원칙이다.
제우스의 별명이 ‘제우스 제니오스’인 것만 봐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규칙인가를 알 수 있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된 것도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우스 집을 방문해 주인의 아내 헬렌을 훔쳐 달아났기 때문이다.
트로이가 망한 것은 그리스인들이 선물이라고 남겨두고 간 목마를 받아들였기 때문인데 그 안에는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전사들이 들어 있었다. 선물로 사기 치는 것 또한 제니아를 어긴 것이지만 제니아를 깬 집단은 이렇게 벌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인간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도 깨지면서 그리스 사회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1200년부터 호메로스의 작품이 탄생한 직전인 기원전 800년까지 긴 암흑기에 접어든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영화로 만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가 올 영화 중 최고 흥행 기록을 남기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놀런은 비교적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장대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그가 읽고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는 번역본을 낸 에밀리 윌슨은 이 영화가 “끔찍하다”며 혹평했다.
그 이유는 오디세우스가 원작과 다르게 묘사돼 있다는 것인데 일리 있는 주장이다. 놀런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를 비롯, 자신이 저지른 사기와 약탈에 대해 참회하는 인간으로 그려져 있지만 원작에는 이에 대한 뉘우침이 없다. 플라톤이 ‘공화국’에서 부도덕한 영웅과 신을 찬양하는 호메로스 교육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그나저나 이 영화와 함께 오디세이 책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논란이 원작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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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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