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에는 여름 방학 때마다 시골 외가에 가서 지냈다. 논둑길을 걸으면 가끔 묘한 냄새를 맡곤 했다. 고소함에 매캐함이 섞여 있던 그 냄새는 알고 보니 논바닥에서 메뚜기를 잡아 가마솥 뚜껑에 볶을 때 나는 냄새였다. 메뚜기볶음이 당당하게 메뉴에 오른다는 것을 알고 나는 기절초풍했다.
서울에서 다니던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드럼통을 실은 리어카가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드럼통 가까이 가면 짭조름하고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드럼통 안에는 번데기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아이들은 신문지를 돌돌 말아 만든 ‘일회용 컵’에 담긴 50원어치 번데기를 사 먹었다. 나는 구역질을 참으며 멀리 돌아서 가곤 했다. 메뚜기도 번데기도 당시 유행하던 몬도가네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징그럽고 야만적인 관습이라고 생각했다. (‘몬도가네’는 1960년대 이탈리아의 다큐멘터리 몬도 카네(Mondo Cane, ‘개 같은 세상’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는데 21세기의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피상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에 차별적인 요소가 많다.)
좀 더 자라서 대학교에 들어가자, 번데기는 소주잔을 기울일 때 만만한 안주로 자주 등장했다. 나는 더 이상 비위가 상하지 않고 번데기를 몇 개 집어먹을 만큼은 되었다. 시골 외가가 없어지고, 메뚜기를 먹어볼 기회는 끝내 다시 오지 않았다. 메뚜기와 번데기를 먹는 문화가 야만적이라는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가난한 나라에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이해했다. 소, 닭, 돼지처럼 번듯한 선택지가 있다면 굳이 메뚜기와 번데기를 먹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인류는 어쩔 수 없이 곤충을 먹어온 것이 아니었다. 곤충은 전 세계 많은 문화권에서 정규 식단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메뉴다. 특히 적도를 중심으로 남북 위도 30도 사이의 따뜻하고 습한 지역에서 그렇다.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곤충은 양질의 단백질과 지방을 제공하는 가장 효율적인 먹거리로서, 실패할 확률이 높은 동물 사냥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식재료였다. 곤충식 여부는 ‘문명과 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환경에 따른 생존 전략’이었던 셈이다.
곤충식에 대한 혐오는 북쪽 지역으로 갈수록, 특히 유럽에서 강하다. 온대와 냉대 지역에서는 곤충이 줄기도 하려니와, 곤충은 해충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곤충에 대한 편견과 곤충식에 대한 혐오감은 역사적 산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제국주의 유럽이 고기와 우유를 먹는 식단을 ‘발전된 문명’으로, 열대지방 식민지에서 곤충을 먹는 식단을 ‘미개한 문화’로 폄하한 프레임이 전 세계로 받아들여진 결과라고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표된 연구는 흥미로운 반전을 전한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의 고인류 화석은 물론, 수천 년 전 현생 인류의 치아에 낀 치석을 분석해 보니 엄청난 양의 곤충 DNA가 발견되었다. 인류가 먹어온 곤충의 종류와 양은 침팬지와 비교해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류의 수백만 년의 역사는 단백질을 구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생 인류 평균 두뇌 용량의 4분의 1, 몸집의 반절에 불과했던 초기 인류가 두뇌를 4배 이상 키우고 몸집을 늘려온 과정은 빙하기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귀하디귀한 동물성 단백질을 얼마나 정기적으로 확보했느냐에 달려 있었다. 흔히 대형 동물 사냥에 능란하게 됨으로서 최고 포식자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지만, 계속 쌓이는 연구들은 곤충이야말로 인류의 두뇌를 키우고 몸집을 키운 일등 공신이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수백만 년. 동안 인류의 입을 즐겁게 하고 두뇌와 몸집을 키워준 것은 다양한 곤충이었던 셈이다. 소, 돼지, 닭 등 단지 몇 종류의 가축에 전 세계 80억 인구가 먹거리를 의존하며 환경을 파괴하게 된 것은 인류 역사 전체로 보면 수십 년, 수백 년에 불과한 아주 짧은 시간이다.
특히 우리가 사랑하는 소고기를 얻기 위해 지불하는 지구의 대가는 가혹하다. 소고기 위주의 육식 문화는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에 큰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익숙함에서 조금 벗어나 식탁 위에 새로운 대안을 올릴 때다. 해답은 곤충에 있을까?
나는 요즘 인터넷 샤핑몰에서 메뚜기 가루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메뚜기튀김 한 접시가 인류의 끈질긴 생존 의지와 지혜를 보여주는 멋진 요리로 보이기 시작한다.
<
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