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추석이다. 떡을 쳐서 송편을 빚는다. 너덧 달 뒤에 돌아오는 설날에는 가래떡을 송송 썰어서 떡국을 만든다. 차례상에는 참기름이 빛나는 납작한 절편을 올린다. 결혼식을 치르면 시루에 찐 팥시루떡을 돌린다. 떡볶이는 영원한 국민 간식이다. 떡은 멥쌀로도 만들고, 찹쌀로도 만들고, 밀가루를 섞어서도 만든다. 떡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고 몽글몽글하게 행복해진다.
우리는 끈적끈적한 전분을 좋아한다. 밥을 지어도 한 톨씩 부슬부슬 흩어지는 쌀보다는 서로 찰지게 붙어 있는 쌀이 좋다. 그렇게 끈적끈적한 전분을 좋아할 뿐 아니라 문제없이 소화할 수 있는 능력에는 유전자가 한몫한다. ‘AMY1’이라는 유전자가 전분을 분해하는 효소 아밀라아제를 만들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씹을 때 달콤함과 쫄깃함과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자(췌장)에서 나오는 아밀라아제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유전자 AMY2a와 AMY2b다.
아밀라아제를 만드는 유전자는 인간뿐 아니라 다른 유인원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인간에게서는 아밀라아제 유전자가 다수의 복제본을 가지고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 적게는 2개에서 많게는 20개까지 복제본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유전자를 몇 번이고 복제해서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류 진화의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생존 무기였다는 뜻이다. 평균적으로 인간이 매일 필요한 열량 중 60퍼센트 전후를 탄수화물에서 얻는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전분류가 많이 들어 있는 탄수화물은 단연코 곡물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탄수화물 소화 능력은 농경이 자리 잡고 쌀과 밀 같은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1만 년 전 이후에 진화했다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화석에서 추출한 고유전체를 분석한 결과는 놀라웠다. AMY1 유전자가 처음 복제되어 복제수가 늘어난 시점은 농경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최소 8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을 시작하기도 훨씬 이전,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이전의 조상부터 이미 AMY1 유전자가 1개에서 3개 이상으로 복제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떡을 먹었을까?
전분류가 많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식자재는 곡물이지만, 곡물 이전에도 땅속에는 전분의 보고가 있다. 바로 감자나 고구마 같은 덩이줄기 식물과 뿌리, 씨앗들이다. 덩이줄기는 열량이 매우 높다. 이들을 섭취하면 혈당이 높아지고 높은 열량을 낼 수 있다. 모든 동물은 높은 열량을 찾고 좋아하지만, 항상 성공적으로 얻지는 못한다.
인류가 높은 열량을 꾸준히 얻는 데에 성공한 시점은 200만 년 전, 두뇌 용량이 커지고 몸집이 커졌을 때이다. 높은 열량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두뇌나 몸집이 그렇게 커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막대한 열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해 준 일등 공신이 바로 이 덩이줄기 식물이었다.
우리는 흔히 인류의 뇌를 키운 고열량 식자재가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 즉 고기라고 생각해 왔다. 산 짐승을 죽이거나 저며내기 위해 도구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뇌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돌로 만든 도구는 동물을 잡는 데에만 쓰이지 않았다. 땅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덩이줄기 식물을 캐내는 데도 유용하게 쓰였다.
인류가 불을 사용해 이 덩이줄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자 전분의 흡수율은 폭발적으로 뛰어올랐다. 이미 80만 년 전부터 AMY1 유전자 복제수를 늘려가며 얻은 뛰어난 전분 소화 능력으로, 인류는 구운 덩이줄기에서 고열량을 얻어, 거대한 뇌와 큰 몸집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고기 못지않게 땅속의 전분 식물이 인류 진화의 엔진이었음을 최신 유전학이 입증해 주고 있다.
이후 1만 년 전 농경이 시작되고 곡물이 인류의 주식이 되자, AMY1 유전자는 또 한 번의 진화적 대폭발을 맞이한다. AMY1 복제본을 많이 가진 이들이 전분을 많이 먹는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해졌다.
이에 따라 현생인류의 AMY1 복제본 수가 2개에서 20개까지 다양하게 분화한 것이다. 곡류에 물과 열을 가해 만든 미음과 죽은 최고의 이유식이 되었고, 아이들의 이유기를 앞당겨서 터울을 줄임으로써 신석기 시대의 인구 폭발을 끌어냈다. 인류 진화에서 ‘성공’이 더 많은 후손을 남기는 일이라면, 알파-아밀라아제 유전자의 복제야말로 인류 대성공의 열쇠였던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현대인 중에는 AMY1 복제본을 10개 이상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80만 년 전 조상처럼 단 2개만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복제본이 적은 사람들은 떡을 좋아하지 않거나 떡을 먹으면 잘 체할까? 올 추석에는 식탁에 둘러앉아 누가 떡을 멀리하는지 가만히 눈여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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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교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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