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트러스트를 만들어 두라는 말은 다들 들어서 만들기는 했는데, 그게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지 차분히 설명해 주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상속 법원 절차(프로베이트)를 안 거쳐도 된다는 말만 들었을 뿐 정작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 서류철은 책장에 꽂혀 있는데 그다음이 캄캄하다는 분이 많다.
어렵게 볼 일은 아니다. 리빙 트러스트는 재산을 담은 바구니여서, 살아 계실 땐 본인이 들고 있다가 돌아가시면 바구니는 그대로 남고 드는 사람만 미리 정해 둔 관리인으로 바뀔 뿐이다.
그때부터 트러스트는 더 고칠 수 없게 굳고 관리인에게는 지켜야 할 날짜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절차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날짜를 놓치면 관리인이 개인 돈으로 물어낼 수도 있어서,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60일 - 제일 사고 많이 나는 날짜
사망 후 60일 안에 법이 정한 통지서를 보내야 하는데, 누구에게 보내느냐가 핵심이다. 재산을 받는 사람 전원은 물론이고 ‘유언장도 트러스트도 없었다면 법대로 상속받았을 사람’ 전원에게도 보내야 한다. 뒤쪽은 트러스트에 뭐라고 썼든 상관없이 정해지기 때문에 “둘째에게는 한 푼도 주지 말라”고 못 박아 뒀더라도 둘째는 자녀니까 통지를 받아야 하고, 빼놓은 사람일수록 더 챙겨야 한다.
■120일 - 다툴 수 있는 문이 닫히는 날
통지를 받은 날부터 120일이 지나면 그 사람은 트러스트가 잘못됐다고 다툴 수 없게 되지만, 통지를 안 보낸 사람에게는 이 시계가 아예 돌지 않아 몇 년 뒤에도 소송이 들어온다. 한 푼도 못 받게 된 자녀조차 “이 트러스트 자체가 무효다”라고 다툴 자격은 남아 있으니, 통지는 귀찮은 의무가 아니라 분쟁을 일찍 닫는 무기다.
■1년 - 나눠주기 전에 빚부터
리빙 트러스트는 상속 법원 절차는 피하게 해 주지만 빚에서 재산을 지켜 주지는 못한다. 살아 계실 때 언제든 빼낼 수 있던 재산이라, 고인의 카드빚이나 병원비, 미납 세금이 트러스트 재산까지 따라온다. 이러한 경우 채권자가 돈을 달라고 나설 수 있는 기간은 사망일부터 1년이어서, 그 1년을 기다리든지 법원 절차로 기간을 더 짧게 닫든지 골라야 한다.
빚과 세금을 정리하기 전에 형제들에게 먼저 나눠줘 바구니가 비어 버리면 채권자가 관리인 개인을 쫓아올 수 있기 때문에, 현명한 관리인은 여유분을 남겨 두고 맨 마지막에 나눈다.
■그 사이에 챙길 날짜들
사망과 동시에 트러스트는 별도의 납세자가 되므로, 세금번호(EIN)를 받아 트러스트 이름으로 계좌를 열고 고인 돈과 자기 돈을 섞지 않는 것이 첫걸음이다. 명의를 옮기지 못한 소액 재산은 40일이 지나면 간단한 진술서로 은행에서 직접 받을 수 있고, 부동산은 150일 안에 소유가 바뀌었다고 카운티에 신고해야 한다.
캘리포니아에 주 상속세는 없지만 ‘프랍 19’라는 함정이 있어서, 물려받은 자녀가 그 집에 직접 들어가 살고 정해진 한도 안에 들어올 때만 부모의 낮은 재산세가 유지되고 임대용 부동산은 그 혜택 없이 시세로 재평가된다. 신청서를 따로 내지 않으면 받을 것도 못 받는다.
한편 좋은 소식도 있는데, 물려받은 재산의 취득가는 사망일 시세로 자동 올라가 나중에 팔 때 세금이 크게 줄어드니, 그날 시세 감정을 받아 두면 두고두고 쓸 증빙이 된다.
■맺음말: 문서부터 꺼내 보자
한국에 재산이 있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한국의 부동산과 예금에는 한국 상속법과 상속세가 따로 적용되어 미국 트러스트 문서 한 장으로 정리되지 않으니, 미리 설계해 두지 않으면 남은 가족이 두 나라 절차를 동시에 감당하게 된다.
결국 모든 답은 트러스트 문서 안에 있다. 본인이나 부모님이 만들어 둔 문서를 제대로 읽어 본 적이 없다면 오늘 꺼내 읽는 것부터가 시작이고, 필자의 유튜브 채널 ‘미국변호사 존청’에 관리인이 할 일과 기한을 순서대로 정리해 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www.jclawcp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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