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잡아” 라는 말은 짧지만, 그 안에 위로와 동행의 마음이 들어 있어 사람을 안심시킨다. 마치 어두운 길에서 누군가 손을 잡아주는 것처럼.
거문고를 전공한 동생이 있다. 좋은 학교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집을 떠나 고시원 생활을 했다. 좁은 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이를 악물고 필기시험 준비를 했다. 낮의 대부분은 실기 시험 준비에 매달렸다. 거문고 줄을 뜯는 손끝은 점점 단단해졌고, 마음도 함께 단단해져 갔다. 그러나 손가락이 굵은 줄을 견디지 못했다. 엄지 손가락이 아파오더니 풍선처럼 부어 올랐다.
병원에서 살을 떼어내는 수술을 해야 했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두달 동안 손가락을 쓰면 안 됩니다.” 하지만 서울대 실기시험은 한 달 뒤였다. 동생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절실했다. 가죽으로 작은 손가락 골무를 만들어 살을 떼어낸 손가락에 끼웠다. 상처 위에 덧댄 작은 갑옷 같았다. 다시 거문고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한달 후 실기시험을 보았다. 꿈을 향해 간다는 것은 저렇게 끝까지 놓지 않는 일인가 생각했다.
그 때는 12월에 시험을 치르고 합격 발표가 1월초에 있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동생과 함께 할 수 없었다. 그해 마지막 밤, 제야의 종소리가 밤하늘로 퍼지던 그 시간, 막막한 마음을 두 손에 모았다. 살면서 몇 번 없었던 간절한 기도를 했다.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동생의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해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때 “염려하지 말고 내 손을 잡아.” 내 마음을 붙드는 분명한 음성, 그 한마디가 마음을 조용히 잡아 주었다. 창 밖에서는 여기저기 송년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그 밤의 공기와, 두 손 모았던 간절한 기도를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실기시험이 끝나고 발표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드디어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기뻐서 박수 치던 그날에 나는 오히려 그 밤을 기억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 보이지 않는 위로 하나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자기 힘만으로 버틸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아무리 애써도 결과를 알 수 없고, 불안은 밤새 마음을 흔든다. 그럴 때 사람은 누군가의 손을 찾는다. 가족의 손일 수도 있고, 친구의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위로일 수도 있다. 내게 그 밤은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직접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 끝까지 믿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가장 중요한 손은 보이지 않는 손이다. 사람의 손이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붙드는 손이다. 그 손은 인간이 무엇으로 버틸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손가락의 살을 잘라내야 했던 절망과 아픔 속에서 실기시험을 치른 동생은 끝까지 자신의 손을 놓지 않았다. 끝까지 꿈을 붙들었다. 아프다고 주저앉기에는 너무 오래 꿈을 향해 살아온 시간이었다. 나는 그런 동생의 손을 마음으로 붙들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은 불안 속에 흔들리던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었다. 동생은 자신의 손으로 거문고를 붙들고 있었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어떤 손이 동생을 붙들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그 밤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어 본다.
“괜찮아, 내 손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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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ㆍ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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