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남의 안부는 쉽게 묻는다. 친구의 건강을 걱정하고, 자녀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공동체의 어려움 앞에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사람들의 안부는 물으면서 정작 나의 마음이 지쳐 있는지, 외로운 지, 기쁜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얼마 전에 ‘안부 전화의 온도’라는 글을 썼다. 그 글을 쓰고 나서 문득 “나는 나의 안부를 얼마나 물으며 살았을까?” 궁금했다. 휴대폰에는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처가 가득하다. 또 글감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 둔 메모와, 기도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둔 기도문이 들어 있다. 많은 사람에게 안부를 하면서도 정작 나를 위한 말에는 인색했다. 안부는 상대의 일상이 궁금할 때 묻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남의 소식을 듣고, 가족의 안부를 챙기고, 친구와 전화를 한다.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오늘 힘들지 않았어?” 라고 묻지 않는다. 가장 궁금한 사람은 내 안에 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 피곤하다는 말로 하루를 넘긴다.
나 자신에게는 “오늘도 애썼구나.”라는 한마디를 아끼고 살았다. 나에게 묻는 안부는 어쩌면 가장 짧은 기도 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따뜻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내 마음도 누군가 나에게 따뜻한 안부를 물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안부는 대답을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나에게 소중하다고 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거울 앞에 조용히 서서 나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불러 안부를 전했다. ”형숙아! 요즈음 여러가지를 배우는 일과, 책 읽는 일이 부쩍 많아졌는데 힘들지 않아?” “괜찮아. 오늘도 바빴지만 즐겁게 지냈어.”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뭉클했다. 아마 그 소리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나보다.‘형숙(馨淑)’이라는 이름의 뜻을 다시 찾아보았다. 형은 소리 고울 형(馨), 향기 형으로 ‘덕과 명성이 향기처럼 멀리 퍼진다’는 뜻이고, 맑을 숙(淑)의 의미는 맑고 깨끗하고 품성이 아름답다’였다. 이름을 다시 살펴보는 순간, 부모님이 내게 남겨주신 작은 유산을 발견한 것 같았다. 이름의 의미를 생각 하면서 좋은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렸다.
안부는 상대에게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온기가 가장 먼저 닿아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신기하게도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들이 모두 내 안에 있었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대화이지만, 안부는 내 마음을 돌아보는 대화였다. 남을 위해 기도하며 따뜻한 말을 준비했던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작은 위로 한마디를 건네는 일이 필요했다. 나를 아끼는 마음은 이기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한 힘이라는 것을 배워 간다.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친구에게도 안부를 묻는다. 하지만 가장 늦게 안부를 묻게 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다.‘안부’란 살아 있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누군가 알아주기를 기다리기 보다 내 자신의 삶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당신은 오늘, 당신의 안부를 물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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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숙 시인·수필가 미주문협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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