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걷던 친구가 갑자기 뒤로 넘어졌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에 있는 한 뼘 남짓한 낮은 턱에 발이 걸린 것이다.
세월을 온몸에 두른 여자들이 더위를 식히려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하자며 나선 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제 우리에게 남은 행복이 뭐겠니? 맛있는 음식 먹는 기쁨이 아니겠어?”라며 웃었다. 그런데 사소한 부주의로 골반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은 것이다. 불과 몇 센티미터의 턱이 한 사람의 삶을 몇 달 동안 바꾸어 놓았다.
내게도 턱에 걸려 넘어져 몸에 새겨진 흉터가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맞이한 여름방학이었다. 우리 가족은 제사나 명절 차례를 지내러 큰집을 찾았고, 여름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으레 피서를 가듯 큰 집에서 지내곤 했다.
큰아버님 댁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와 광으로 이어진 커다란 기와집이었다. 삼 십리 길을 걸어온 꼬마가 지친 다리를 멈추고 집 앞 길가에서 큰 집을 올려다보면 병풍처럼 산을 뒤로 두르고 솟을대문이 하늘을 치받고 있었다.
어느 사이엔가 큰 올케가 달려 내려와 “작은 아씨 오시느라 힘드셨죠?”라며 손을 잡아 주었고, 돌계단을 오르고 높은 대문턱을 넘으면 정갈하게 빗질 된 안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큰 집에는 일꾼들이 드나드는 쪽문이 하나 더 있었다. 문턱이 높아 조심해야했지만, 이 문은 어린 마음에 동화의 세계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쪽문 밖에는 까치가 날아와 시문을 읊는 고목이 된 감나무가 서 있고, 비탈진 산밭에는 개구리참외와 수박이 단내를 풍기며 익어갔다. 목화는 다래를 키우기에 분주하고, 콩밭과 수수밭에서는 은밀한 대화가 오가는 듯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작물들은 모두 한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서로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높낮이도 따지지 않았다.
나는 사촌들과 쪽문을 통해 산밭으로 나가 익은 참외를 따서 옹달샘에 담가 놓는 일을 좋아했다. 그날도 재빨리 달아나 버리는 오빠들을 따라가려다 쪽문 턱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는 길을 일을 도와주는 언어장애인 아줌마가 나를 업고 뛰었다. 큰집은 산촌이라 병원에 가려면 십 리 길을 걸어 나가야 했다. 큰어머니는 아줌마와 소통을 답답해했지만, 그래도 기운 하나는 돌절구도 깨뜨리는 장사라며 나를 그 아줌마 등에 업혔다.
피범벅이 된 나를 업고 아줌마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내며 달렸다. 신작로 먼지는 하얗게 피어났고, 걸음이 느린 우리 엄마는 기를 쓰고 따라오셨다.
베적삼을 입은 아줌마의 등이 금세 땀으로 젖어 들었다. 나는 그날 아줌마의 등에서 배어 나오던 진실된 땀 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
이마를 다섯 바늘 꿰매었다고 한다. 아팠던 기억보다는 잘 참았다며 의사 선생님이 주신 하얀색 바둑껌이 신세계였던 기억이 더 선명하다.
생각해 보면 냉면을 먹기 위해 넘어야 했던 턱과, 동화처럼 신기했던 세상의 턱은 어쩌면 삶에서 우리를 한 뼘씩 자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사람 마음에 생긴 턱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턱을 허물어뜨릴 시원한 산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려나.
어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
“세상에 턱지지 말고 살아라.”
<
조옥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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