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계몽 철학자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을 하나 들라면 루소일 것이다. 그는 ‘불평등 기원론’이란 책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평화롭고 박애적인 삶을 살았는데 문명의 등장과 함께 부자유하고 불평등하며 폭력적인 삶으로 바뀌었다며 자연 상태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루소는 누군가 땅에 금을 그어 그 안에 속한 땅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그것을 인정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이런 그의 생각은 기존 체제를 뒤엎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사회 개혁의 핵심이라는 신앙을 많은 사람의 마음 속에 심어줬다. 세계 역사를 뒤흔든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의 배후에는 루소의 사상이 스며 있다.
그러나 루소의 생각과 달리 자연 상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고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며 그런 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며 짐승 같고 추악하며 짧다”라는 주장도 있다. 정치학의 창시자인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이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군주에게 절대 권력을 주고 그에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고 적었다.
누구 주장이 맞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 아프리카의 초원에 가 보면 된다. 얼핏 보면 얼룩말과 사슴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것 같지만 곧 하이에나와 사자들과 물고 물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프리카 뿐만 아니라 동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약육강식의 살륙이 일어나고 있다. 폭력은 동물 사회의 기본 원리다.
동물은 먹고 살기 위해 생명체를 해치지만 먹는 것과 관계없이 조직적으로 다른 집단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전쟁을 하는 것은 사람뿐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사람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고 인간을 제외하고는 지능이 가장 높은 동물인 침팬지도 전쟁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제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침팬지 사이에 들어가 살며 그들의 생태를 연구한 제인 구달이다. 구달은 1974년부터 1978년까지 탄자니아의 곰비 스트림 국립 공원에서 카사켈라 공동체 내 두 침팬지 그룹이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관찰했다.
1974년 이 그룹내 일부가 떨어져 나와 남쪽에 카하마라는 새 그룹을 형성했다. 그러나 원 카사켈라 그룹은 새 그룹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새 그룹의 성체 남성을 모두 살해한 후 공동체를 흡수 통합해 버렸다.
침팬지 전쟁은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2015년 우간다 키발레 국립 공원의 엔고고 언덕에서는 서부파와 중앙파 침팬지들의 전쟁이 벌어졌다. 이 그룹도 원래는 같은 커뮤니티였으나 갈등을 중재하며 평화를 유지해 온 ‘원로’들이 사망하면서 두 그룹으로 분열됐고 결국 서부파가 중앙파를 공격해 궤멸시켰다. 서부파는 숫적으로는 열세였음에도 조직적인 기습 공격으로 중앙파 성체 남성을 제거한 후 새끼들까지 죽였다.
침팬지까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전쟁의 뿌리가 보기보다 깊음을 말해준다. 전쟁을 벌이는 동물이 인간 다음으로 머리가 좋은 침팬지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외로운 개인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이 높고 그 공동체가 경쟁 집단을 제거하고 세력을 키울 때 그 구성원도 생존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능이 필요하다.
신화와 전설이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서양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그리스 양대 세력인 스파르타와 아테네간 전쟁 원인으로 ‘공포와 명예, 이익’을 들었다. 그리스 최강의 육군을 보유하고 있던 스파르타는 페르샤와의 전쟁에서 해군으로 페르샤 함대를 격침시키며 새 맹주로 떠오른 아테네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 때 이들 두 나라와 군사 동맹을 맺은 소국끼리 분쟁이 벌어지자 두 나라는 자신의 세력권을 수호하기 위해 끼어들고 결국은 각자의 명예가 걸린 대전으로 확대되고 만 것이다. 기존 강국이 신흥 세력의 발호를 막기 위해 벌이는 전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부른다.
제1차 세계 대전도 이 ‘투키디데스 함정’의 전형적인 예다. 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은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인에 의해 암살당했고 오스트리아가 전쟁을 선포하며 시작됐지만 이것이 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번진 데는 얽히고 섥힌 각국의 동맹 관계에다 신흥 세력으로 떠오르는 독일에 대한 영국의 공포가 있었다. 독일 GDP가 영국 GDP를 추월한 해가 1차 대전이 발발한 1914년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팽창과 이를 방해하려는 집단의 제거를 원한다. 한 때 핵무기가 ‘공포의 균형’으로 전쟁을 막아줄 것이란 기대가 있었으나 최근 우크라이나전과 이란전까지 수많은 전쟁들은 이것이 헛된 희망임을 보여준다. 인간이 존재하는한 전쟁도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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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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