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주의’(Objectivism)는 대다수 한인들에게 생소한 단어다. 미국에서 이는 막연히 사물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독자적인 체계를 갖춘 사상을 말한다.
아인 랜드가 창시한 이 주의는 실체는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이성만이 이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개인의 행복 추구야말로 최고의 선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유일한 사회 제도가 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라고 믿는다.
감정이나 신앙은 실체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따라서 모든 종교는 허구다. 또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또한 모두 오류다. 객관주의자들은 이런 전체주의 사상이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맹신에 호소하는 의사 종교로 보고 있다.
이 사상을 주창한 인물의 본명은 알리사 로젠바움이다. 1905년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스부르그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레닌그라드 주립대에서 역사를 전공했으나 공산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시카고에 있는 친척을 방문한다는 구실로 1926년 러시아를 떠난 후 돌아가지 않았다.
할리웃에서 단역 배우와 극작가로 일하던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43년 타협을 모르는 건축가 하워드 로아크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파운틴헤드’(The Founainhead)였다. 이어 1957년 나온 ‘아틀라스’(Atlas Shrugged)는 그녀를 유명 작가로 만들었다. 이 책은 지금도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의 하나로 꼽힌다.
1951년 그녀는 LA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후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철학 토론 클럽을 운영한다. 이 클럽에 뒤늦게 가입한 인물이 하나 있다. 훗날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FRB) 의장으로 있으면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한 오리지널 경제 대통령 앨런 그린스팬이다.
항상 거무죽죽한 옷차림에 음침한 얼굴 표정을 하고 다녀 랜드로부터 ‘관을 운반하는 사람’이란 뜻의 ‘운구자’(undertaker)란 별명을 얻었으나 랜드는 그의 비범한 지적 능력을 알아 봤고 그린스팬 또한 1982년 랜드가 죽을 때까지 그녀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루마니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헝가리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한때 줄리아드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기도 했다. 그러다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해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했다. 그는 또 컬럼비아대 아더 번스 교수 밑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는데 번스는 훗날 FRB 의장이 된 인물이다.
그린스팬은 1987년 레이건에 의해 FRB 의장에 지명된 후 4번이나 재지명돼 사상 두번째로 긴 임기를 마친 후 2006년 물러났다. 그가 연방 의회의 인준을 받은지 불과 두달 후인 1987년 10월 다우 산업 지수가 하루에 22.6%가 떨어지자 시장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러자 그린스팬은 충분한 유동성 공급을 약속해 이를 가라 앉힌다. 그리고 2000년 하이텍 버블이 터지며 시장이 극심한 혼란에 빠지자 연방 금리를 1%대로 떨어뜨려 다시 안정시킨다.
그가 의장으로 있던 20년 가까운 시절은 미국 경제가 낮은 인플레와 높은 경제 성장률 등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우리는 신을 믿는다’가 아니라 ‘우리는 그린스팬을 믿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명성에 금이 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2008년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생긴 대공황 이후 최악의 대불황이 그것이다. 비판자들은 그가 금리를 인위적으로 지나치게 오래 낮추는 바람에 서브프라임 등 불량 모기지가 판을 치게 됐고 그것이 결국 부동산과 금융 시장의 붕괴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린스팬 또한 이를 시인한 바 있다.
일부에서는 그의 시장 만능주의가 주범이라고 공격하기도 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객관주의자’를 비롯한 순수 시장 경제 신봉자들은 FRB의 존재 자체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가장 큰 개입이라 본다. 대공황이 온 것은 당시 FRB가 인위적으로 유동성 공급을 막았기 때문이고 대불황이 생긴 것은 인위적으로 돈을 너무 풀어서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경제 지휘관 자리를 떠난지 20년이 됐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올해 그의 후임으로 취임한 케빈 워시는 39년전 그와 똑같이 백악관에서 취임 선서를 한 그린스팬을 거론하며 그야말로 “나에게 이 자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보여준” 첫번째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커뮤니케이션과 데이터 수집 등에 관해 5개 전담반을 조직했는데 관계자들은 이것이 그린스팬 따라 하기라 보고 있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FRB 의장으로 평가받던 그린스팬이 지난주 10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그의 공과 과는 역사가 판단하겠지만 그만큼 미국인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인물도 드물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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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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