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행동 본능이 건강한 강아지는 자기 아비와 함께 놀면서 거칠게 대하면 등을 뒤집어 바닥에 대고 낑낑거리며 발버둥 친다. 아비는 어린 새끼가 완전히 지쳐서 꼼짝달싹하지 못할 때 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고 밀어 붙인다.
그러면 어린 새끼는 깨갱깨갱 비명소리와 함께 꼬리를 바닥에 내리고 네 다리는 허공을 향하는 올바른 반응을 보인다. 개에게 이와 같은 반응은 순복과 자비를 나타내는 생존신호이다. 그 신호는 승자인 아비를 자비와 평화의 천사로 만든다.
거칠게 달려들던 아비는 등을 바닥에 대고 네 발을 버둥거리는 새끼 앞에서 멈추고 방향을 틀어 다른 새끼에게 다가간다. 거기서도 똑같은 실험 놀이를 시작한다. (비투스 드뢰셔의 ‘휴머니즘의 동물학‘ 중에서)
태어난 지 4주 쯤 되면 강아지의 사회화(社會化)는 눈을 뜬다. 그 후 약 4주 동안은 아비가 자기 새끼에게 철저한 사회화 교육을 시킨다. 만일 이때 강아지가 아비로부터 순복, 자비, 평화의 신호를 주고받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공동체 안에서 무자비하게 버림받는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새끼가 아비로부터 순복, 자비, 평화의 신호를 주고받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하여 강한 야성을 갖추게 될 때 공동체 안에는 큰 재앙이 발생할 수 있다. 다른 동료들이 순종과 평화를 간구하는 태도를 보여도 이것이 공격을 멈추고 자비를 베풀라는 의미로 인지하지 못하고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공격하여 죽이는 자가 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공동체를 반사회적 공동체라고 한다.
인간관계의 변화는 관계의 질에 달려있다. ‘용서와 포용’이 있는 곳에 인격적 관계는 무르익는다. 사람은 누구나 용서와 포용을 통하여 감동받을 때 새 관계의 문을 열고 창의적인 삶을 살아간다. 미래의 도전적인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뛰어드는 내재적 힘을 얻는다.
예수는 용서와 포용의 대가다. 예수의 제자 중에는 실패와 배반으로 그 인생이 얼룩진 베드로가 있다. 그때마다 예수는 베드로의 실패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감동적인 용서와 포용으로 보여 주었다. 베드로를 향한 예수의 용서와 포용방식은 독특했다.
첫째, 베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 둘째, 베드로의 실수를 스스로 깨닫도록 했다. 셋째, 지금보다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하여 베드로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주었다.
예수가 베드로에게 제시한 새로운 삶의 비전은 ‘인류에게 봉사하는 목자’가 되라는 것이었다. 산비탈과 들판에 흩어져 있는 양떼를 돌보고 먹이는 자세로 방황하는 인류를 봉사하라는 예수의 분부는 베드로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인류 역사의 큰 영향을 끼쳤다.
마침내 베드로는 실로 거대한 새 사명을 성취할 수 있는 봉사의 사람으로서 거듭났고 그 전보다 더 강한 믿음의 사람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로버트 레슬리는 말한다. “실패를 통해 용서와 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성숙함의 표시중의 하나다. 성숙한 사람은 실패 때문에 파멸되지 않고 오히려 실패에서 도약의 기회를 얻는다.
그 도약은 이웃에 대한 봉사와 헌신이다.” 누가 참 리더인가. 기꺼이 자신을 내놓고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사는 사람이 참 리더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바보인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당신은 이런 바보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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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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