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트란토(Otranto)…바다가 품은 천 년의 기도
살렌토반도의 동쪽 끝, 오트란토에 도착하자 바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머금은 물은 해안에서 투명한 연둣빛으로 시작해 수평선으로 갈수록 짙은 코발트블루로 변했다. 해변에는 형형색색의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잔잔한 물속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오랜 역사의 도시라기보다 밝고 평화로운 휴양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바다를 등지고 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도시의 시간이 달라졌다. 밝은 석회석 골목과 오래된 집, 작은 상점 앞의 화분과 선인장, 담쟁이 아래 세워진 자전거가 걸음을 늦추었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바다와 성벽, 성당의 종탑이 번갈아 모습을 드러냈다.
오트란토는 이탈리아 본토의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도시다. 아드리아해 건너편에는 알바니아와 그리스가 있어 오래전부터 동방과 서방을 잇는 관문이었다. 고대에는 히드룬툼(Hydruntum)이라 불렸고, 그리스와 로마, 비잔틴과 노르만의 역사가 이곳을 지나갔다. 서로 다른 문명은 도시의 돌과 건축, 신앙 속에 여러 겹으로 남았다.
구시가 중심에 자리한 오트란토 대성당은 화려함보다 오랜 세월을 견딘 돌의 무게로 다가왔다. 노르만 시대인 11세기 후반에 세워져 1088년 봉헌된 성당이다. 정면에는 커다란 장미창이 열려 있었고, 햇볕에 바랜 석벽 앞을 여행자들이 조용히 오갔다. 단정한 외관만 보아서는 그 안에 중세 예술의 거대한 세계가 숨어 있으리라고 짐작하기 어려웠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중앙 통로를 가득 채운 모자이크 바닥이 펼쳐졌다. 수도사 판탈레오네가 1163년부터 1165년까지 작은 돌 조각을 맞추어 완성한 작품이다. 거대한 ‘생명의 나무’를 중심으로 아담과 하와, 노아의 방주와 바벨탑 같은 성경 이야기뿐 아니라 동물과 괴수, 열두 달의 풍경, 알렉산더 대왕과 아서왕까지 등장한다. 모자이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돌로 기록한 한 권의 책처럼 보였다. 중세 사람들은 이 장면들을 통해 성경의 이야기와 자신들이 이해한 우주와 인간의 삶을 읽었을 것이다. 수많은 발걸음이 그 위를 지나갔지만 작은 돌들은 여전히 서로를 붙들며 85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성당 아래 지하 제단으로 내려가자 분위기는 더욱 깊어졌다. 모양과 재질이 서로 다른 수십 개의 기둥이 낮은 아치를 떠받치고 있었고, 희미한 빛이 돌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여러 시대의 건축물에서 가져온 기둥과 주두가 한 공간을 이룬 모습은 오트란토의 역사와 닮아 있었다. 출신과 시대는 달라도 모두 같은 지붕을 떠받치고 있었다.
한 여인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었다. 관광객의 발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도 그 침묵을 흔들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 성당이 과거를 전시하는 박물관이 아니라 지금도 누군가의 슬픔과 소망을 받아주는 살아 있는 공간임을 깨달았다.
오트란토의 기억에는 1480년의 비극도 새겨져 있다. 오스만군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전승에 따르면 신앙을 버리라는 요구를 거부한 주민 약 800명이 미네르바 언덕에서 처형되었고, 대성당에는 오늘날까지 그들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다. 이들은 2013년 가톨릭교회의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눈부신 모자이크 아래에는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다 희생된 사람들의 기억도 흐르고 있었다.
대성당을 나와 작은 산피에트로 성당으로 향했다. 9세기에서 10세기 무렵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잔틴 양식의 성당이다. 규모는 작지만 그리스 십자가형 구조의 내부와 둥근 천장을 프레스코화가 감싸고 있었다. 빛바랜 성인들의 얼굴과 성경 장면에서는 동방 기독교의 흔적이 느껴졌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사이에 놓였던 오트란토의 위치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구시가 끝에는 육중한 아라곤성이 바다를 향해 서 있었다. 1480년의 함락과 이듬해 도시 탈환 이후 방어시설을 다시 정비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둥근 망루와 두꺼운 성벽은 오트란토가 오랫동안 두 세계가 마주치는 경계였음을 보여준다. 지금은 성벽 아래를 여행자들이 걷지만, 한때 이곳의 수평선은 아름다움과 두려움이 함께 밀려오는 곳이었다.
다시 해변으로 나오자 바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속에서 웃고, 작은 배는 천천히 항구를 빠져나갔다. 오트란토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것은 바다의 눈부신 색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침입과 상처를 겪으면서도 사람들은 다시 집을 짓고, 돌 위에 생명의 나무를 새기고, 성당에서 기도하며 삶을 이어왔다. 오트란토의 바다가 유난히 깊고 푸르게 보인 것은 그 아래 천 년의 기도와 기억이 함께 잠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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