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울림에서 오는 잔잔한 감동이나 뜨거움을 경험할 때가 있다.
사람마다 울림의 자리는 다양하다. 울림을 주는 자리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 단연 ‘한 사람의 삶’을 들고 싶다. 흔들리기 쉬운 인생에서 끝까지 참·따듯함·옳음·아름다움을 담아 살아낸 한 사람의 삶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울림을 주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얼마 전, 조용하지만 일생 꾸준히 ‘울림’을 주던 켄터키 출신의, 농부이자 시인이요 환경운동가이자 문명비평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가 92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도를 접했다. 기독교평화(平和)주의자였던 베리는 일생 ‘어떻게 살아야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화두(話頭)삼아 ‘지구의 끝없는 아름다움을 경외하고, 우리가 초래한 피해를 되돌리기 위해 매일 조금씩 노력하는 삶’을 묵묵히 실천해 왔다.
비록 그의 삶이 대중의 삶으로까지 널리 확산되지는 않았지만, 그는 생명운동가요 ‘미국의 간디’로 불릴만큼 비폭력평화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조금이라도’자연의 생명과 건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돌보고 지켜내려 했던 그의 삶이 주는 ‘울림’은 깊고 크다. 깊고 클 뿐 아니라 그 울림이 맑고 청아해 마치 아름다운 풍경소리 같다.
18세기 조선의, 저잣거리의 우스갯소리를 모아 놓은 <고금소총>(古今笑叢)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선비의 송별연에 선비들이 모여 술잔을 나누며 저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에 대한 싯구를 읊으며 취흥을 돋웠다고 한다. 술이 거나해진 송강 정철이 가장 먼저 읊었다, ‘청명한 밤, 밝은 달빛을 살짝 가리고 지나가는 구름 소리’. 다른 선비가 뒤를 이었다, ‘단풍 깊게 물든 먼 산봉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 애주가 서애 유성룡이 뒤를 이었다, ‘새벽 잠결에 창을 두드리는 술 방울 떨어지는 소리’. 한 젊은 선비가 점잖게 읊었다. ‘산골 초가집에서 영특한 젊은이 시 읊는 소리’. 이어 백사 이항복이 자못 은근한 웃음을 지으며 ‘깊은 밤 그윽한 방에서 고운님 치마 벗는 소리’, 그러자 모두들 손뼉을 치고 웃으며 최고의 싯구라고 외쳤다고 한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 얼마나 많은가? 당시 조선의 일반인들은 갓난 아기 우는 소리, 아이의 글 읽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여인네의 다듬이 소리를 아름다운 소리로 여겼다고 한다. 또 <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솔바람 소리, 시냇물 소리, 거문고 소리, 반상(盤上)에 바둑돌 내리는 소리, 섬돌에 비 떨어지는 소리, 창 밖에 눈 흩날리는 소리를 아름다운 소리로 꼽았다고 한다. 모두 듣는 이의 마음을 씻어 줄 아름다운 소리들이다. 이에 하나 덧붙인다면 꽃 피는 소리, 꽃 지는 소리는 또 어떨지 싶다.
그러나, 좋은 삶이 빚어내는 ‘울림’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아닐까 한다.
말소리 노랫소리가 입으로 내는 소리라면, 울림은 삶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소리다. 우리는 시나 소설 음악·예술작품을 듣거나 볼 때, 설교나 법문을 들을 때, 진정한 삶을 살아낸 사람을 만날 때 “울림을 받았다.”고 말한다.
깊은 울림을 주는 문학작품이나 음악·예술작품, 영화 등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유명인의 작품이라고, 미사여구 가득 담은 대작이라고 반드시 울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청산유수의 설교라고 혹은 반대로 알듯말듯 어려운 설교라고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니다. 울림은 만남이다. 물리학에서 두 파동(波動)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공명 현상이 일어나듯, 울림은 그 작품 혹은 그 사람의 삶이 내 안에 이미 존재하던 감정·경험·갈망·상처·희망·가치관과 맞아떨어질 때 일어난다. 울림이란 두 존재가 하나됨의 순간에 나오는 마음의 공명(共鳴)이고, 그 순간 내면의 귀에 들리는 아름다운 소리다.
작품에서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이 울림이다. 그 사람의 삶에서 나를 발견하고 만나는 것이 울림이다. 그 사람의 삶에서 하늘을 만나고 참사람의 향기를 맡는 것이 울림이다. 울림은 하늘 마음과의 만남이며, 우주가 빚어내는 율려(律呂)요 음악이다. 삶이 빚어내는 울림이야말로 참되고 아름다운 소리이다. 울림은 사람의 체온과 마음을 담은 땀과 진정성, 자연의 그러함, 땅의 부드러움, 하늘의 텅빈 마음을 담은 삶에서 나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울림! 울림있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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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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