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얼굴이 반쪽 되었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내가 하늘나라로 먼 여행을 떠난 뒤 내가 갑자기 반쪽이 되었다. 우리는 반쪽으로 태어나서 때가 되면 둘이 합해 하나가 되었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반쪽으로 되돌아간다. 지난달 아내가 삼 년의 췌장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서 너무 황당하고 얼떨떨해서 그냥 며칠을 지내다 보니, 이건 예삿일이 아니었다.
우선 혼자 삼시 세끼를 챙기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때가 되면 끼니를 준비해서 밥상을 마주하고 온갖 세상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젠 혼자 앉아 꾸역꾸역 음식을 목구멍에 밀어 넣는 일이 쉽지 않다. 혼자 살면 잔소리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아주 순조롭게 지낼 줄 알았는데, 내 그런 생각은 한순간 무참하게 무너졌다.
이젠 기쁘면 같이 웃을 일도,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아옹다옹 다투거나 화낼 일도 아예 없다. 밥상머리의 빈자리에 눈길을 자주 주다 보면 넘어가던 밥알이 살아서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연신 빈 의자를 건너다보지만, 한 번 간 그 사람은 빈 공간에서 나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만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아두고 기다려도, 끝내 그 사람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즐겨 마시던 커피를 끓여 찻잔을 탁자에 놓아두어도, 주인 없는 찻잔은 시간을 멈춘 듯 그냥 식어갈 뿐이다. 그래도 온종일 커피잔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나에게 다소나마 위안이 된다.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반쪽을 향해 나는 무언으로 반항해 본다.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을 나누면 곱절로 늘어난다는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하지만 지금은 슬픔을 나누어야 할 반쪽마저 없다. 나는 이제 슬픔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내가 떠나기 전에 못다 한 말과 떠난 뒤의 내 속죄가 서로 엉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넘긴다.
아내는 꽃을 무척 좋아했다. 매일 정원에서 꽃을 잘라 묘지에 가서 꽃병에 꽂아두고 나면, 잠시나마 그녀가 곁에 있는 듯하다. 그 무덤 옆 잔디밭에 덩그러니 빈 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반쪽인 내가 언젠가 다시 그녀의 곁으로 올 때 누울 자리다. 60년 넘게 동행한 끈이 이렇게 질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살면서 함께 경험했던 기쁨과 슬픔이란 단어의 차이가 미묘하게 변해가면서,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먼저 간 반쪽은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 영면하겠지만, 남은 반쪽의 가슴에 맺힌 슬픔은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속담도 있지만, 그건 제삼자가 남에게 듣기 좋게 하는 말일 뿐, 홀로 슬픔을 달래는 이에게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다. 반쪽이 남겨놓은 발자취가 이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아내가 눈앞에 없으면 그저 그립고 못 잊을 뿐인 줄만 알았는데, 가슴속을 이토록 아리게 후벼 파고드는 줄은 예전엔 알지 못했다.
미국 사람들도 배우자를 ‘The other half’(나머지 반쪽)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사람의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모양이다. 그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 두 반쪽은 서로 다른 모양이지만, 결국 서로를 채워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는 같은 의미일 것이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반쪽끼리 만나 얼마나 긴 세월을 함께 살았느냐보다, 그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아내의 병이 깊어 갈 무렵, 우리는 지나온 일을 되짚어 보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아내는 병상에서 힘들어하면서도 반쪽답지 않게 말했다. 나를 만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보고, 남매도 잘 키우고, 손자를 다섯 명이나 두어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으며,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값진 삶을 누렸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 말을 수긍하면서, 다른 반쪽은 하루라도 더 평안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 주려고 동분서주 밤낮없이 노력했다. 그녀는 슬퍼하는 나를 다독이며 그 긴 인연의 끈을 차마 놓지 못했다. 그리고 자기가 죽은 후에 절대로 울지 말라고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내 반쪽인 아내를 대학교 2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하기 일주일 전, 친구의 권유로 처음 만났다. 그 시절엔 지금과 달리 군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펜팔이라는 게 있었다. 고향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었지만, 인연이란 단순한 계산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내는 내가 삼 년 동안 군 복무를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나 혼자서 막사 안에서 시간만 나면 군사우편을 열심히 날렸다. 답장이 오지는 않아도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쓰고 또 썼다. 철조망에 갇힌 군인에게는 더 없는 즐거움이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공짜로 군사우편을 보낸 내 정성에 하느님도 감동하셨는지, 우리 두 반쪽을 하나로 묶어주셨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맺어진 끈도 세월이 가면서 아주 단단한 끈으로 변하면서 반백 넘게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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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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