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갈 때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우리 글 표현에 새삼 놀라곤 한다. 역시 모국어라 그런지 오래되고 헐거운 옷을 입은 것처럼, 바로 피부에 편안히 닿는다. 재미있고 기발한 간판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길거리 배너에 적힌 글에도 표현이 독특하거나 너무 강렬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친구가 맛있는 시골 솥 밥을 사준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남양주 외곽으로 친구는 운전해 나갔다. 그리 크지도 않은 다리를 지날 때였다. 앞에 눈길을 확 잡아끄는 배너가 있었다.
‘떨어지면 죽습니다.’ 색깔도 선홍색과 검은색으로. 와우! 너무 노골적이다. ‘추락 주의’ ‘위험’ 표지판도 아니고, 기나긴 한강 다리도 아니고 그저 시골의 짧고 아담한 다리일 뿐인데.
한자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의 후유증인지, 한글 전용의 표현이 어색하면서도 강하게 와 닿았다. 말뿐만 아니라 글자도 이렇게 힘이 있는 거구나, 한참 후에도 그 배너에 적힌 글이 계속 생각났다.
만화를 보면 말풍선에서 벗어난 글씨가 점점 커지고 글자 수도 늘어나면서 주인공 머리를 짓누르고 압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처럼 글자들이 살아있고 거대한 괴물처럼 사람을 오그라들게 하는 상상을 나도 가끔 했었다. 살면서 느끼는 감정이 그 단어가 그대로 커다란 글씨 괴물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지배하는 거다.
한때 삶이 유난히 버겁고 책임져야 할 일이 많고, 벗어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비참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단어가 유난히도 내게 힘을 발휘했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나도 말풍선을 벗어난 그 글자들에 습격당하고 옴짝 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던 그 문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하나씩 나가떨어지고 나도 평정심을 찾곤 했다. 그러면서 어쩜 그리도 비참이란 글자는 그리도 꼭 맞게 나를 비참하게 만들까?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또는 힘이 있는 것만 같았다.
심연이란 글자도 마찬가지다. 그 단어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물에 빠져 끝없이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그 장면 속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어두운 글자들에 자주 매여있곤 했을 때, 어느 날 우연히 본 숫자들에서 다른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한 카페 벽에 3, 33, 333 숫자가 삼각형 모양으로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저게 무슨 뜻이지? 무얼 나타내려 한 걸까? 마치 비밀 코드나 암호라도 숨어있는 것처럼 해석하려 했다. 그다음 순간 그건 그냥 장식물, 형태로만 바라보면 되는 거지 의미를 찾아내려 할 필요는 없겠다는 내 멋대로의 쉬운 결론이 났다. 그 후로 점점 글자의 의미에 사로잡히기보다 생긴 모양의 아름다움으로 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특히 훈민정음은 그 모양으로도 참 기이한 듯 아름답다. 그것을 조합해서 아름다운 문양을 이루는 것이 의미 전달 못지않은 또 하나의 매력인 듯싶다. 이제는 나에게도 글자가 그 뜻으로만 나를 지배하지 말고, 형태로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 되었으면 싶다. 자음과 모음이 제각각 흩어지고 다르게 배열되어, 뜻은 팽개치고 색과 모양으로만 이루어진 한 아름다움으로 내게 다가와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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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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