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또 캐나다를 못살게 굴고 있다.
작년 2월, 취임 직후부터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고 막말을 쏟아내며 25% 관세를 부과했던 트럼프는 지난 17일, 캐나다의 산불연기가 미국으로 넘어와 대기오염이 심각해졌다며 이에 대한 추가관세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더니 불과 사흘 만에 이와는 별도로 캐나다의 제품 대부분에 대해 무려 50%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령에 서명한 것이다.
산불연기에 관세라니, 그럼 한국으로 날아오는 미세먼지는 중국에 관세를 물리고, 지금 산불이 한창인 유럽에서도 옆 나라로 연기가 넘어갈 때마다 서로 관세를 물린다면 말이 되겠는가. 한마디로 상대를 무시보고 협박과 조롱을 일삼는 불한당의 행태 같아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산불연기 시비가 오갈 때, 마침 로키산맥 여행 차 캐나다에 있었다. 거기서 직접 접한 트럼프에 대한 현지인들의 분노와 반미정서는 상상 이상이었다. 관세전쟁이 시작된 작년 초부터 미국산 제품 대신 ‘바이 캐나디안’ 운동이 벌어졌고, 스타벅스와 테슬라 불매운동은 물론 리커 스토어들은 미국산 와인과 술을 다 치워버렸고, 미국여행은 아무도 안 간다고 했다.
아울러 “미국의 51번째 주, 트뤼도는 캐나다 주지사”라는 트럼프의 망언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국민들의 분노 속에 불명예 퇴진했다. 그의 뒤를 이은 마크 카니 총리는 그보다 훨씬 더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국력의 차이 때문에 트럼프의 행패에 딱히 맞대응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캐나다는 생존하기 위해 미국을 필요로 한다. 우리 없이 그들은 생존할 방법이 없다”는 트럼프의 야비한 언사에 대한 캐나다인들의 충격과 분노, 무력감과 좌절감, 믿어왔던 친구에게 당한 배신과 모욕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두 나라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생각해보니 미국과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붙어있는 나라, 캐나다에 대해 막상 아는 것이 별로 없고, 그닥 관심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에서 깨닫게 되었다.
캐나다와 미국은 15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최 우방국으로서, 자동차산업, 에너지시장, 국방협력, 목재, 철강, 농업 분야에서 사실상 하나의 공동체처럼 운영되어왔다. 따라서 캐나다는 국제문제에서 언제나 미국과 입장을 함께 했고, 미국이 참전한 모든 전쟁에 함께 참전했다.
6.25 한국전쟁 때도 캐나다군은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한 4개 국가의 하나였고,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인 2만6,791명을 파병하여 516명의 전사자를 냈다. 밴쿠버를 비롯한 캐나다의 여러 도시에 한국전쟁기념비가 세워져있는 이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미국에 대해 협상력을 갖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캐나다는 국토 면적이 러시아 다음으로 세계 2위인 방대한 나라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거주 불가능 지역이라 인구가 4,200만 명에 불과하다. 3억 4천만에 이르는 미국과는 비교가 안 될뿐더러, 영토가 100배 작은 한국보다도 인구가 적으니 그만큼 경제적 역량이 부족한 것이다. 캐나다의 대표 기업을 찾아보면 룰루레몬 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니 말해 무엇하랴.
캐나다는 원유와 천연가스, 우라늄, 니켈, 금, 목재, 알루미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지만 원자재를 미국에 팔기만 했지, 정제하고 제조하는 인프라를 키우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역풍을 초래했다. 미국이 다짜고짜 관세를 올리면 캐나다 경제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캐나다가 미국을 믿고 군사력을 키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를 통해 미국과 공동으로 방위를 지켜온 캐나다에는 항공모함도, 핵무기도, 대규모 군사력도 없어서 세계 군사력 수준이 28위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계기로 캐나다에서는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아시아와의 무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높아졌다. 군사력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져서 최근에는 기록적인 신규병력을 모집했고, 국방비도 최대 규모로 확대했다. 지난 2월 캐나다군 지원서류 제출자는 4만116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거의 두배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신규 입대자가 7,000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30년 만의 최대 규모라고 한다. 바로 얼마 전 캐나다의 잠수함 사업 수주에서 한국이 독일에 고배를 마셨지만, 이 역시 국방력을 키우려는 사업의 일환이었다.
캐나다에 다녀온 직후라 트럼프의 억지 공격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다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캐나다가 단단하게 일어서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를 기대해본다.
한편, 한여름의 캐나다 로키 여행은 쾌적하고 아름다웠다. 첩첩 이어지는 로키산맥과 수많은 호수들의 절경에 눈이 호사했고, 청정 침엽수림 속에서 마음까지 깨끗이 씻어진 기분이었다.
다만 7월이 최성수기라 어딜 가나 관광객이 들끓었고, 그중에서도 인도인, 중국인, 한국인들이 관광지를 점령해 엄청 소란스러웠으니, 천혜의 자연을 오롯이 즐기지 못했다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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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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