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그레이스 로만(1925?2018)은 나사(NASA) 최초의 수석 천문학자였고, 초대 천문학장이었으며, 최초의 여성행정관으로서 초기 우주과학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1959년 그녀가 나사에 합류했을 때, 이 기관은 설립된 지 6개월밖에 안되었고 여성 천문학자는 외계인 취급을 받았지만, 로만은 처음부터 나사의 우주천문학 프로젝트를 이끌었을 정도로 독보적인 과학자였다. 그녀는 또한 우주과학 분야에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나사와 학계가 여성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인 인권운동을 펼쳐 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로만의 가장 큰 공로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성공적으로 개발하여 우주로 쏘아올린 것이다. 당시만 해도 NASA의 프로그램은 달 착륙에 집중되어있었고, “우주에 망원경을 쏘아 올려야한다”는 천문학자들의 주장은 황당한 아이디어로 여겨졌다.
하지만 로만은 과학자들을 모으고, NASA를 설득하고, 의회를 설득하고, 예산을 확보하여 이를 실행에 옮겼다. 망원경의 설계와 위치, 크기와 장비까지 결정하는 핵심역할을 수행한 그녀에게 동료들은 감사와 경의를 담아 ‘허블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지난 30일, 나사는 ‘낸시 그레이스 로만 우주망원경’(Nancy Grace Roman Space Telescope)을 발사했다. 우주망원경에 대한 그녀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차세대 적외선 우주망원경에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은 미국 천문학계가 여성의 이름을 붙인 두 번째 주요기관으로, 첫 번째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확인한 베라 C. 루빈 천문대가 그것이다,
로만우주망원경은 허블보다 관측범위가 100배 넓고, 속도는 1,000배 빠르다. 허블이 100년 걸릴 천체관측을 한 달 만에 완료할 수 있으며, 마이크로 중력렌즈로 수십억 개의 은하와 별을 포착하여 10만 여개의 새로운 외계행성을 발견할 예정이다.(현재까지 발견된 외계행성은 6,354개) 또한 우주의 약 95%를 구성하며 팽창 또는 수축을 좌우한다고 알려진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본질을 규명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우주에 대한 인류의 이해도는 어린아이 수준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광대하며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우주의 시작이라든지 우주의 구성물질, 태양계 너머의 세계는 상상력과 추론에 의지할 뿐이었다.
학자들은 점점 더 거대한 관측소들을 세우고 별에 대해 연구했지만, 지상에서는 대기의 흐림과 빛의 굴절, 도시 광공해 같은 장벽 때문에 별빛이 왜곡되곤 했다. 그래서 ‘직접 우주로 나가서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결과가 바로 우주망원경이었다.
1990년 쏘아 올린 허블우주망원경은 지구 상공 560km에서 96분 주기로 공전하면서 맑고 선명한 적외선 시야로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허블을 통해 인류는 우리은하 외에 다른 은하들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고, 태양계 밖 행성들의 존재와 특성에 대한 지식도 크게 확장됐다. 또 허블은 우주가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지 정밀 측정하여 우주의 나이를 계산하는 데 기여했고, 우주 곳곳의 숱한 은하 중심부에서 거대 블랙홀들을 포착했다. 이 망원경의 이름은 위대한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에서 따온 것이다.
허블을 시작으로 나사는 일련의 거대 우주 관측소들을 쏘아 올렸다. 1991년 캄튼 감마선 관측소, 1999년 찬드라 X선 관측소, 2003년 스피처 우주망원경, 2009년 케플러 우주망원경, 2021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2025년 스피어엑스 근적외선 우주망원경이 그들이다.
허블과 제임스 웹이 아주 자세히 좁게 보는 대신, 로만은 우주를 아주 넓게 훑어보는 망원경이다. 제임스 웹이 적외선을 사용해 우주의 먼 과거, 유년기까지 들여다보는 동안. 로만은 거의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 빅뱅 후 초기 우주의 숨 막히는 모습을 포착할 것으로 기대된다.
칼텍(Caltech)과 나사 제트추진연구소(JPL)의 수많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43억 달러와 10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개발한 로만은 지금부터 한 달 동안 날아가 지구에서 100만 마일 떨어진 제2 라그랑주 점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라그랑주 포인트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상쇄되는 지점으로, 천체 관측에 이상적이고, 우주선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로만 망원경은 약 100일 후부터 관측을 시작하게 되고, 몇십년 째 활동 중인 허블과 달리 임무 수명은 5년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엄청난 속도로 사진을 수집할 예정이다.
현재 우주에서 활동 중인 망원경은 약 30기나 된다. 이들은 가시광선, 자외선, 근적외선, X선, 감마선, 마이크로파 등 각기 다른 파장대에서 우주를 관측하고 있다.
완전한 미지의 세계, 우주에 관한 것은 언제나 놀랍고 무섭고 경이롭다. 우주망원경은 단순히 천문학자들의 연구실험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시작을 탐구하는 눈이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얼마나 오래된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도구다.
생명의 기원을 찾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정직한 눈, 우주망원경의 눈들은 오늘도, 침묵 속에서 우주를 읽고 있다. 지금도 허블과 제임스 웹과 로만은 태초의 별빛을 쫓고 있다. 언젠가는 생명체의 흔적을 포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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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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