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은 입법, 사법, 행정부를 모두 노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고령의 노인들이다. 대통령부터 의회 상하원까지 팔순을 넘긴 정치인들이 최고 권력을 휘두르고 있고, 법조계의 대법원 판사들도 절반이 70대를 넘겼다.
이 때문에 요즘 많이 거론되는 단어가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다. 노인지배사회, 고령정치, 나아가 노년층의 독재를 포함하는 단어로, 워싱턴 정가를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된다.
미국 민주주의는 너무 늙었다. 한국이나 유럽 국가들과 비교할 때 확연히 세대교체가 늦고, 노인 냄새가 진동을 한다. 지금 미국의 지도자들은 베이비부머(1946~64년생) 혹은 그 이전 세대가 주류를 이루고, 이들은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똑같이 존재하는 문제로, 젊은 세대의 진출에 크나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26년 현재 미 의회 내에 80세가 넘는 현역의원은 총 25명에 달한다. 상원에 척 그래슬리(92), 버니 샌더스(85), 미치 맥코널(84), 짐 리쉬(83) 등 6명이 있고, 하원에는 엘리노어 노튼(89), 맥신 워터스(88), 낸시 펠로시(86), 짐 클라이번(86), 존 카터(85) 등 19명이 있다.
전 상원 원내대표이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미치 맥코널은 2023년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말을 멈추고 30초 동안 ‘얼어버린’ 일이 두 번 있었다. 이후 그의 건강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란이 됐고, 올여름에는 3주 동안 입원하여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지난달 자택으로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심폐소생술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2023년 타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의 예는 더 참혹하다. 미 역사상 최장수 및 최고령 여성 상원의원의 면류관을 썼던 그녀는 임기 중 치매에 걸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거기에 대상포진과 뇌염까지 겹치면서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아있는 사진이 여러 번 보도됐다. 말년에는 몇 달 동안 상원회의에 출석하지 못했는데도 물러나지 않았고, 결국 현역 중에 90세로 사망했다.
더 놀라운 기록은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 2003년 사망할 때 그의 나이는 100세 29일이었고, 그때까지 현역이었다.
“미국 상원은 세계에서 가장 명망 높은 요양원이다.”
지난달 뉴욕타임스가 미국정계, 특히 상원의 고령화가 심각하다며 내놓은 평가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상원은 오랫동안 노화와 질병문제를 겪어왔지만, 이에 대응하는 제도와 규정이 없다”면서 “의원들이 주식거래 내역을 공개해야하는 것처럼 건강상태와 직무수행 가능여부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라 한 사람이 너무 오랫동안 권력을 갖는 문제다. 척 그래슬리는 1981년부터 45년째. 매코널은 1985년부터 41년째 상원의원이다.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낸시 펠로시는 1987년부터 39년간 무려 20선에 성공했다.
그러니까 30세에 하원의원이 되거나, 40세에 상원의원이 된 사람은 ‘현역’이라는 막대한 이점을 누리며 30~50년간 미국정치의 중심에 있을 수 있게 된다. 일단 의회에 입성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정치적 인맥이 쌓이고, 선거자금 모금이 수월해지며, 위원회 영향력과 당내 서열도 높아진다. 그로 인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고 정책 결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사람은 80세가 넘도록 파워를 휘두르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다.
사실 이러한 구조는 유권자들이 만드는 측면도 있다. 사람들은 “정치가 너무 늙었다”고 하면서도 자기 지역구 의원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익숙한 얼굴이면 별다른 검증 없이 계속 뽑아줌으로써 정치판의 물갈이를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과 연방의원의 최소연령이 정해져있다. 하원의원 25세, 상원의원 30세, 대통령은 35세 이상이면 출마할 수 있다. 하지만 “몇 살까지 재직할 수 있다”라는 최고연령 제한은 없다. 젊은 사람에게는 “너무 어려서 안 된다”고 하지만, 고령자에게는 “너무 늙어서 안 된다”고 제한하지 않는다.
권력은 마약과도 같아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나 강제하지 않으면 스스로 내려놓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최근 연령상한선(age ceiling)을 만들어야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 공직자에게 연령상한선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시기를 지나면서 미국인 중 거의 80%가 연방 선출직 공무원의 연령 제한을 지지하고 있다.
상원(senate)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노인(senex)에서 나온 것이다. 경험 많은 연장자들이 국가의 중요한 일을 논의한다는 개념이었다. 그런데 당시엔 46세 이상을 연장자(seniors)라 했고, 60세가 넘어가면 확실한 고령층으로 보았다.
2천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수명이 늘었다 해도 80대 노인들에게 나라를 맡기기엔 AI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역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젊고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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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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