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는 ‘트럼프 계좌’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2025~2028년) 중 태어난 아기가 이 주식 투자 계좌에 가입하면 정부에서 1000달러(약 146만 원)의 종잣돈을 준다. 계좌는 아기가 18세가 될 때까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등 미국 주요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에 장기 투자된다. 부모나 친척, 부모의 고용주가 연간 최대 5000달러(약 732만 원)까지 계좌에 납입할 수 있으며 18세 전까지 투자금은 원칙적으로 인출할 수 없다. 신생아가 아니더라도 18세 미만 미국 시민이라면 가입할 수 있지만 1000달러의 종잣돈은 주어지지 않는다.
장기 투자 상품인 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복리 효과는 커진다. 미국 정부가 과거 S&P500 평균 상승률을 기초로 추산한 기대치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1000달러를 받은 후 별도의 추가 납입 없이도 자녀가 18세가 됐을 때 받을 수 있는 돈은 6000달러(약 878만 원)다. 연간 250달러씩만 기부해도 1만 9000달러(약 2780만 원), 기부금 최대치인 5000달러씩을 불입하면 27만 1000달러(약 3억 9700만 원)를 받을 수 있다. 5000달러씩 납입해 27세에 돈을 찾으면 액수는 74만 2000달러(약 10억 8600만 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교육비, 생애 첫 주택 구입, 창업 등으로 사용하면 일반 투자금보다 유리한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물론 우려도 적지 않다.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기여금을 많이 내 빈부 격차를 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이달 4일 공식 출시된 후 약 3주 만에 700만 개 이상의 계좌가 개설됐다. 민간기업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일례로 스페이스X는 200만 명 이상의 어린이에게 스페이스X 주식 1주씩을 트럼프 계좌를 통해 기부하겠다고 했다.
이 정책이 겨냥하는 효과는 여러 가지다. 가장 큰 것은 아이들과 미국 기업, 자본시장, 경제를 함께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주가 부양 효과도 있다. 트럼프 계좌로 올 하반기 미국 증시에 약 200억 달러의 자금이 신규 유입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행사에서 “우리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우리의 위대한 기업들을 개인적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회성 현금 살포 대신 가정의 중장기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미국의 발상 자체는 한국도 참고해볼 만하다. 특히 최근 한국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넘쳐나는 세수를 어디다 쓸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고 한다. 이미 채권시장에서는 올가을 추가경정예산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전국민지원금이 또 지급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추경으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한국판 트럼프 계좌’ 프로그램을 출시하는 것은 어떨까. 민생지원금이 단기적으로 경기는 부양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 경제 체질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안 그래도 물가가 들썩여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마당에 대규모 재정지출은 또 물가를 자극해 재정·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한국판 트럼프 계좌는 경제·사회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아이들과 우리의 기업, 자본시장, 경제가 함께 커나간다는 상징성이 크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주식·경제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의 수요가 높은 상황에서 정책이 손에 잡히는 교본이 될 수도 있다. 주식시장의 중장기적인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고소득층일수록 더 큰 혜택을 볼 것이고, 투자금이 18년이나 묶여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반론도 나올 것이다. 그런 만큼 제도 설계는 치밀해야 한다. 고소득층에 혜택이 쏠리지 않도록 보완하고 투자 대상과 세제 혜택도 한국 현실에 맞게 짜야 한다. 그럼에도 단기 소비보다 미래 세대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정책이라면 충분히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한국판 트럼프 계좌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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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서울경제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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