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가 모든 비(非)이슬람 종교물을 없애라는 포고령을 내린다. 아프가니스탄 곳곳에 있던 문화유산의 70%가 우상숭배의 잔재라는 이유로 잿더미가 돼 사라졌다.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간다라 미술 양식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바미안 석불상도 하루아침에 파편 조각이 됐다.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는 2010년대 중반 이라크와 시리아 영토에 있던 유적 30여 곳을 폭파시켰다. 2000년 역사를 간직한 시리아의 고대도시 ‘팔미라’의 고대 신전과 개선문이 IS의 야만적인 유적 파괴 행위로 무너져 내려 전 세계가 경악했다.
■광기로 가득한 문화유산 파괴 행위는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란의 베르사유’로 불리는 테헤란의 ‘골레스탄 궁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천장과 벽면을 장식한 거울이 산산조각이 났다. 골레스탄 궁전은 인근 경찰서를 겨냥한 이스라엘 공습의 희생양이 됐다. 지난해 7월에는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에 있는 정교회 축일성당이 무너져 내렸다.
■지금 부산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가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후 한국에서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건 처음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29일 발표하는 세계유산 후보 30곳 중에는 중동 전쟁으로 훼손 위험에 처한 요르단강 서안지구 ‘세바스티아’ 유적지와 레바논 남부 아멜산 지역의 십자군 시대 성곽 등이 ‘긴급 등재’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유네스코는 전쟁 등으로 파괴 위험이 커 시급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보는 곳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이라는 명칭으로 특별 관리한다. 올해 세계유산위원회 행사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K팝 스타 지드래곤은 “유산을 지키는 일은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전쟁은 인명과 재산뿐 아니라 인류가 쌓아온 문화유산에도 참혹한 상처를 남긴다. 전쟁의 광기로 파괴 위험에 놓인 문화유산을 보호하려는 노력은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 세대의 당연한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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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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