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춘화가 죽고/ 천리향이 죽고/ 명자꽃과 동백만 남은/ 엄마의 꽃밭// 꽃 피는 봄마다/사진을 보내시는 아버지/ 올해는 동백이 왔다// 득녀했다고 훈련소로/ 홀딱 벗은 내 사진 보내신/ 할아버지// 어느 별에서 온지도/ 어느 별로 돌아간지도 모르는// 골짜기마다/ 봄은 가고/ 봄은 오고/ 봄은 밥알 물고 지나갔다
영원의 벼랑 _ 장옥근
시애틀의 7월은 일 년 중 가장 눈부신 축제의 서막이다. 레이니어 산의 잔설 위로 쏟아지는 싱그러운 햇살은 이국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고단함을 따스하게 위로해 준다. 그러나 잡을 길 없는 계절의 바뀜은 늘 충직해서, 오히려 이 찬란한 여름의 길목에서 문득 등 뒤를 돌아보게 만든다. 한 해의 절반을 넘어선 지금, 지나온 계절은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고국의 시인 장옥근의 시 ‘영원의 벼랑’을 음미하며, 푸르른 워싱턴주 하늘 아래서 생의 아득한 깊이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시인의 눈에 비친 고향의 봄은 마냥 화사하지만은 않다. 엄마의 꽃밭에서는 탄생과 소멸이 소리 없이 이어지고, 아버지는 자식에게 남은 꽃사진을 보낸다. 손주의 탄생 소식에 기뻐하며 훈련소로 아기 사진을 보내던 할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어느 별에서 왔다가 어느 별로 돌아갔는지 모를 인생의 순환 속에서, 시인은 나직하게 읊조린다. “봄은 밥알 물고 지나갔다” 라고.
‘봄이 밥알을 물고 지나갔다’는 이 서늘하고도 아름다운 한 줄의 싯구 앞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봄날 처마 밑에 부지런히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 나르던 제비의 분주한 날개짓이 떠오른다. 찰나처럼 스쳐 지나가는 봄의 속성을 이토록 감각적으로 포착한 문장이 있을까. 그러나 이 밥알은 단순한 풍경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지상의 생명체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위해 입에 물어야만 하는 치열한 생계의 양식이자, 생(生)을 향한 엄숙한 의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구절은 전통 장례 의식인 반함(飯含)의 기억을 소환한다. 떠나는 이의 입에 저승길 배고프지 말라며 쌀알을 넣어주던 경건한 의식 말이다. 결국 시인의 봄은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밥을 먹고 자라나는 축복의 시간이자, 동시에 누군가가 먼 별로 떠나가는 이별의 시간이다.
태평양을 건너와 이민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역시 이 싯구와 닮아 있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자식들을 키워내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치열하게 ‘밥알’을 물고 질주해 왔던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일터로 향하던 시간들, 가게 문을 열고 닫으며 흘린 땀방울 속에서 이민의 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 모진 세월 동안 고국의 부모님은 저물어가셨고, 어느덧 우리 역시 거울 속에서 희끗희끗해진 머리칼을 발견하곤 한다. 꽃이 피고 지는 아득한 순환의 벼랑 위, 그러나 그 허무의 벼랑을 견디게 한 것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삶은 유한하고 잡을 수 없이 흘러가지만,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생의 무게를 짊어졌던 마음이 있었기에 우리의 삶은 허무가 아닌 숭고함으로 채워진다. 눈부신 7월의 시애틀 햇살 아래서,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서로의 지친 어깨를 다독여 본다. 우리가 물고 온 밥알의 무게만큼, 우리의 생은 참으로 눈부시고 아름다웠다고 나지막이 위로를 건네고 싶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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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선 서북미문인협회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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