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CLA 연구 보고서
▶ 자바시장 ‘유령상가’로
▶ 보일하이츠·맥아더팍도 “공포에 소비·고용 위축”
▶ LAUSD 학교 등록도↓

지난해 ICE 이민급습 단속 이후 곳곳에 셔터가 내려져 있고 인적이 없어 썰렁한 LA 다운타운 자바시장 한 거리의 모습. [박상혁 기자]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이 이어지면서 LA 지역 이민자 밀집 상권과 지역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여름부터 이어진 단속의 여파로 거리에는 인적이 끊기고 소상공인들의 매출은 반 토막이 나는 등 경제적 후폭풍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 UCLA 라티노 정책연구소 연구진의 보고서를 인용, ‘ICE 급습 이후 LA의 동네들이 어떻게 유령도시로 변했나’라는 보도를 통해 한때 남가주 최대 샤핑 명소이자 한인상권의 젖줄이었던 LA 다운타운 자바시장의 샌티 앨리가 지금은 셔터가 내려진 빈 점포와 한산한 거리만 남은 ‘유령도시’로 변했다고 전했다.
과거 저렴한 의류와 잡화를 찾는 샤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던 샌티 앨리는 현재 상당수 상점이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손님은 물론 상품을 진열한 마네킹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불과 몇 블록 떨어진 도심은 평소처럼 북적이지만 이민자 상권만 유독 활기를 잃었다.
이 같은 현상은 다운타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히스패닉 주민이 밀집한 보일하이츠와 맥아더팍, 이스트 LA, 사우스 LA 등에서도 유동인구가 크게 줄면서 식당과 소매업체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보일하이츠에서 멕시코 식당 ‘라 치스파 데 오로’를 운영하는 멜초르 모레노는 “단속이 줄어든 뒤에도 손님은 돌아오지 않았다”며 “사람들은 언제든 ICE가 들이닥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외출 자체를 꺼린다”고 말했다. 조사에 따르면 그는 단속이 가장 심했던 시기 월평균 약 7,000달러의 매출 손실을 입었으며, 일부 평일에는 하루 매출이 500달러에 그쳐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한인타운 인근 맥아더팍 역시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7월 ICE와 연방 치안당국이 대규모 작전을 벌인다는 소문이 며칠 전부터 퍼지면서 공원은 이미 텅 빈 상태가 됐다. 실제 작전 당시 연방 요원과 주방위군이 험비 차량 17대와 전술차량, 기마부대까지 동원해 공원을 수색했지만 주민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당시 현장을 둘러본 뒤 “도시가 군사 점령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고 비판했다.
노동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매일 아침 모이던 홈디포 주차장과 세차장 등은 ICE 단속의 주요 대상이 되면서 일자리를 찾으려는 노동자들의 발길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6월에는 할리웃 홈디포를 비롯해 의류업체와 사업장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단속이 이뤄지며 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불안감은 학교로까지 번졌다. LA 통합교육구(LAUSD)에 따르면 2025~2026 학년도 학생 수는 39만2,654명으로 전년도보다 약 4% 감소했다. 특히 해외 출생 학생인 ‘뉴커머(Newcomer)’ 학생 등록은 예상치보다 9% 줄었다. 알베르토 카르발류 교육감은 “이민 단속이 가족의 주거와 이동, 생활 안정을 흔들면서 학생들의 교육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실제 단속보다 ‘단속 소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스타그램과 시그널, 텔레그램, 왓츠앱 등을 통해 ICE 출몰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으로도 상권 전체가 순식간에 텅 비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한 지역 활동가는 “실제 단속이 없어도 누군가 ICE가 왔다고 말하면 그 동네는 하루 종일 사람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통계도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추방데이터 프로젝트에 따르면 지난해 6월 1일부터 10일까지 LA 지역 ICE 체포 건수는 722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103명보다 7배 가까이 증가했다. 체포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단순 이민법 위반자였으며, 유죄 전과자는 약 30% 수준이었다.
LA 카운티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지난해 ‘소기업 회복기금’을 조성해 식당과 노점상, 자영업자들에게 최대 5,000달러를 지원했다. 모두 1,300여 개 업체에 총 540만달러가 지급됐지만 현장에서는 실제 피해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UCLA 도시계획학과 크리스 틸리 교수는 “대규모 이민 단속은 단순한 치안 문제가 아니라 지역경제 전체를 위축시키는 경제 문제”라며 “소비 감소와 노동력 부족, 소상공인 폐업이 이어질 경우 경제적 손실은 수십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눈에 띄는 대규모 단속은 줄었지만, 지역사회에 남은 불안감과 경제적 상처는 여전히 LA 곳곳에 깊게 남아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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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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