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월드컵 축제가 끝났다. 그리고 이제 꼭 2년 후면 월드컵보다 훨씬 더 큰 글로벌 스포츠 축제, 2028 올림픽이 바로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LA가 올림픽을 유치한 건 이번이 세 번째, 1932년과 1984년에 이어 42년 만이다. 로고가 ‘LA28’로 정해진 이번 하계올림픽에서는 세계 206개국에서 출전한 1만1,000여명의 선수들이 남가주 전역의 40여개 경기장에서 51개 종목을 놓고 치열하게 실력을 겨룬다.
개막식(7월14일)과 폐막식(7월30일)은 세 번의 올림픽을 모두 치르는 역사적인 장소, LA 메모리얼 콜러시엄에서 진행되고, 8월15일부터는 패럴림픽도 개최된다.
LA28을 기다리는 것은 스포츠팬이어서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화올림픽’(Cultural Olympiad) 때문이다. 1984 올림픽 이후 LA는 문화예술분야에서 ‘환골탈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수준이 급성장했으니, 이번 LA28을 기해 또 다른 도약을 기대해보는 것이다.
1984 LA 문화올림픽은 지금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당시 LA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영화산업은 발전했지만 뉴욕이나 파리 같은 예술의 도시가 아니었고, 클래식과 현대예술의 불모지로 여겨졌다. 디즈니 홀도, 브로드미술관도, LA오페라도 없었고, 게티 센터와 게티 빌라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적 예술가들을 대거 초청했고 18개국이 참여한 음악공연, 현대무용, 퍼블릭 아트, 실험예술, 국제 연극, 거리예술 등이 10주 동안 400회 이상 펼쳐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예술제 개막 무대에 올랐던 독일 현대무용의 혁명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 무용단의 ‘봄의 제전’(Rite of Spring) 공연은 LA뿐 아니라 미국 예술계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했다. 전체가 흙으로 뒤덮인 무대에서 무용수들이 선보인 신들린 듯한 춤은 예술에 대한 개념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이 공연은 40년만인 2024년 다시 한번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 무대에 올라 벅찬 전율과 감동을 선사했다.
1986년 LA 오페라의 창단도 1984 올림픽 예술축제가 기폭제가 됐다. 그때까지 LA에는 상주 오페라단이 없었고, LA시민들은 이따금 순회공연이 찾아올 때나 오페라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84 올림픽에 런던 로열오페라단이 초청돼 11일 동안 3개 작품을 공연했을 때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은 모두 만석의 성황을 이뤘다.
레퍼토리는 벤자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푸치니의 ‘투란도트’였는데,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 역으로 출연했던 플라시도 도밍고가 LA의 음악관계자들을 설득해 오페라단을 창설하게 된 것이다. 창단 초기에는 전속 오케스트라나 음악감독조차 없었을 만큼 초라했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LA오페라는 빠르게 성장하여 미국과 국제무대에서 정상급 오페라로 인정받고 있다.
1984 아츠 페스티벌은 “LA도 세계문화도시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하며 LA의 문화적 자의식을 바꿨다고 평론가들은 회고한다. 실제로 그때 이후 현대미술이 급성장했고, 공연예술이 확장됐으며, 다운타운에 문화지구가 형성됐고, 국제 전시 유치가 가속됐다.
문화올림픽은 IOC 규정상 의무 프로그램이다. 개최국들은 자국의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개최 2~4년 전부터 본격 준비에 돌입한다. 2024 ‘파리 문화올림피아드’는 수년간 철저한 준비를 통해 그해 4월부터 9월 말까지 6개월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패션, 연극, 음식, 무용 등을 주제로 무려 1,000여 개의 행사를 열었다.
이민자들의 다문화도시인 LA는 기술·영화·디자인이 결합된 도시이며, 음악과 OTT산업, 애니메이션, 게임, 패션, 디지털 콘텐츠가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유일의 도시라 문화올림픽의 규모와 영향력은 예상보다 훨씬 커질 수 있다.
대형 공공미술, 올림픽 기념벽화, 디지털 프로젝션, 드론 쇼, AI 인터랙티브 아트, 해변 설치미술, 야외 음악축제를 비롯하여 각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와 예술을 뽐낼 수 있는 기회다. 한인 타운에서도 K팝과 한복, 한국영화, 한국음식을 맘껏 선보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LA카운티와 LA시 문화국을 포함한 다수의 기관이 협력하여 LA28 문화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LACMA와 게티, 모카(MOCA), 브로드(The Broad), LA필하모닉, LA 오페라 등의 대표적 문화예술 공연기관들이 적극 참여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40년 전보다 훨씬 더 문화적으로 자신감 있고 세련된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LACMA의 데이빗 게픈 갤러리 증축, 루카스 내러티브아트 미술관 개관, 브로드 미술관의 신관 확장 등 새롭게 더해질 주요 프로젝트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고대올림픽에서는 경기 기간에 모든 전쟁이 휴전했다. 지금 국제사회에서는 러-우크라 전쟁과 미국-이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2028년에는 세상의 모든 전쟁이 끝나고 평화 속에 올림픽이 치러질 수 있기를, 그리하여 스포츠와 문화가 함께 융성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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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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