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투알’(Etoile)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미국에서 ‘스타’는 인기배우나 연예인을 지칭하지만, 프랑스에서 에투알은 최고등급의 발레무용수에게 부여되는 명칭이다.
보통 발레단에서 최고의 댄서는 수석무용수(Principal Dancer)라 부르지만, ‘파리오페라 발레단’(Paris Opera Ballet)만은 에투알이라는 고유의 명칭으로 그 특별한 지위를 상징한다. 가장 춤을 잘 추는 사람을 넘어, 프랑스발레의 우아한 스타일과 테크닉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거장에게만 허락되는 명예로운 직함, 춤 예술의 정점을 상징하는 국가공인 타이틀이다.
지난 주말 월트 디즈니콘서트홀에서 이 찬란한 ‘별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뮤직센터의 이번 시즌 마지막 댄스프로그램인 ‘발레나우: 파리의 수퍼스타들’(BalletNOW: Superstars of Paris) 공연이 그것이다.
에투알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위고 마르샹(Hugo Marchand)이 큐레이트 한 이 공연에는 무려 6명의 에투알과 2명의 솔리스트가 출연해 반짝반짝 빛나는 무대를 선사했다. (파리오페라 발레에는 현재 16명의 에투알이 있고, 한국인 박세은이 2021년 아시안 최초의 에투알로 지명됐는데, 이번 공연에는 오지 않았다.)
파리오페라 발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발레단으로, 루이 14세가 1661년 설립한 왕립무용아카데미가 그 시작이다. 그 전까지 발레는 이탈리아에서 전해진 귀족들의 사교춤이었는데, 루이 14세가 이를 무대 위로 올려 전문적인 극장예술로 정착시켰다.
자신이 뛰어난 무용수였던 왕은 스승과 함께 5가지 발과 팔의 기본 포지션을 만들었으며, 평생 40개가 넘는 발레작품에서 주역으로 춤추며 발레를 왕실의 중요한 문화로 키웠다. 15세때 ‘밤의 발레’라는 작품에서 그리스신화의 아폴론 신으로 출연하여 금빛 찬란한 태양장식을 달고 독무를 추었는데, 이로 인해 ‘태양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365년의 역사의 파리오페라 발레가 LA에서 공연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첫 공연은 2022년 할리웃 보울 100주년을 맞아 당시 파리오페라 음악감독을 겸임하던 구스타보 두다멜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이때는 박세은 에투알을 비롯한 20명의 무용수들이 참여해 LA필하모닉의 연주로 보울 무대에서 춤 췄다.
이번 ‘발레나우’ 공연은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린 것이 이례적이었다. 디즈니 홀은 춤이나 오페라 같은 무대공연이 아니라 관현악, 실내악, 리사이틀 등의 음악연주를 위해 지어진 뮤직홀이다. 따라서 뮤직센터가 주관하는 댄스, 오페라, 뮤지컬, 연극 공연은 모두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이나 아만슨 디어터, 마크 테이퍼 포럼 같은 퍼포밍 아츠 전용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공연장을 바꾼 이유는 무용수와 관객의 교감을 극대화하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뮤직센터 측은 설명하고 있다. 관객이 멀리 정면에서만 무대를 바라보는 액자형(Proscenium) 극장의 틀을 벗어나, 객석이 사방으로 무대를 둘러싼 개방형 공연장에서는 무용수의 역동적인 몸짓과 근육의 움직임, 생생한 호흡과 발소리까지 관객이 가까이서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
이 공연을 위해 디즈니 홀 무대를 상당부분 개조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오케스트라 석은 물론 바로 앞줄 좌석들까지 들어내 공간을 넓혔고, 무대에는 부상을 방지하는 발레전용 바닥재를 깔았으며, 음향시스템과 조명시설도 세심하게 보강했고, 스테이지 양 옆으로 무용수들의 대기공간을 위한 임시 가벽을 세웠다.
이에 맞춰 위고 마르샹은 디즈니 홀의 유려한 곡선 구조를 고려한 안무 동선과 연출을 새롭게 재구성했고, 클래식과 네오클래식, 현대발레를 아우르는 11개의 춤을 물 흐르듯 풀어냈다.
미셸 포킨의 ‘빈사의 백조’, 롤랑 프티의 ‘카르멘’과 ‘랑데부’ 2인무, 조지 발란신의 ‘소나틴’, 한스 반 마넨의 ‘그노시엔느 3곡’, 캐롤라인 칼슨의 ‘푸른 영혼’ 등 전설적 안무가들의 대표작을 눈앞에서 보는 감동과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두 무용수의 키스 장면이 유명한 ‘르 파르크’(Le Parc) 파드되에서 위고 마르샹과 도로테 질베르가 보여준 기막힌 호흡은 잊지 못할 선물이고 전율이었다.
발레를 보면 볼수록 인간의 아름다움에 무한한 경외심을 갖게 된다. 완벽한 비율의 몸, 완벽하게 통제되는 동작, 이를 통해 전해지는 절절한 감정은 다른 어떤 예술에서도 느끼기 힘든 숭고미의 육체적 현신이다.
그리고 그 서사와 강도는 무용수에 따라, 또 발레단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에투알과 수석무용수들의 테크닉은 너나할 거 없이 완벽하지만, 그 표현과 스타일은 모두 다르다. 몸도 다르고 몸짓도 다르고 에너지도 다르다. 같은 레퍼토리도 영국의 로열 발레, 러시아의 볼쇼이와 마린스키, 미국의 ABT와 뉴욕시티발레의 공연이 모두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파리오페라 발레만의 특징은 무엇일까?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된 우아함과 시적인 아름다움이라고 춤 전문가들은 평한다. ‘발레나우’는 바로 그 정수를 보여준 공연이었다.
<
정숙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