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란 텃밭에 열무가 자란다. 여린 무라고도 하는 열무는 여름철 기력회복과 수분 보충에 탁월한 알카리성 채소다. 올해 두 번째 파종한 열무를 솎아내기 위해 밭으로 나간다. 짙은 초록색 사이로 벌레 먹은 이파리가 구멍을 드러내고 있다. 농약을 쓰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예상한 일이다.
마켙에서 산 열무보다 억세기는 하지만 이것을 시중 열무와 비교할 수 있으랴. 열무를 비롯한 채소를 해충을 피해 잘 기르려면 몇 차례 농약을 써야 한다. 농약도 주지 않고 벌레 없이 멀쩡하게 키워내긴 힘들다. 농약 걱정을 할 바엔 키워 먹는 수밖에 없다. 힘들게 텃밭에 채소를 키우는 이유는 농약 같은 공해를 피하기 위함이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벌레와 나눠 먹는다고 생각하면 속 편하다.
같은 시기에 씨앗을 뿌려도 싹을 틔우고 자라는 속도는 제각각이라 굵은 포기부터 솎아낸다. 엉거주춤 구부리고 힘들게 열무를 뽑아내다 몇 번이나 일어나 허리를 편다. 이럴 땐 채소 키우는 걸 그만둘까 생각하다 시간이 지나면 또 무언가를 심곤 한다. 한반도에서 열무를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가 삼국시대 이전이라고 하니 열무는 우리 민족의 식문화에서 뺄 수 없는 깊은 서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여름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반찬이었다.
열무를 솎아내며 친정어머니를 생각한다. 냉장고도 없던 시절에 여러 식구 먹거리를 준비했던 어머니. 여름에는 김치가 쉬이 익어버리니 며칠 만에 또 김치를 담가야 했다. 김치 외에 매끼 반찬도 만들고 병행하여 아이들 양육에 일도 해야 하는 고된 일상을 어떻게 견디었을까.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는 철없는 자식들은 반찬 투정에 불평이나 했으니 돌이킬 수 없는 후회에 마음이 아프다.
뽑아낸 열무를 다듬어 물을 받아 담가 놓는다. 혹시나 있을 해충을 죽이기 위해서다. 한참 후에 보면 웬만한 벌레는 양푼 바닥에 죽어 있다. 벌레가 먹은 건 건강한 채소라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깨끗이 씻은 열무를 소금에 절여놓고 붉은 고추를 따서 씨를 털어낸다. 찹쌀가루로 풀죽을 쑤어 놓고 두어 시간 절인 열무를 씻어 소쿠리에서 물을 뺀다.
마늘과 고추를 갈아 찹쌀죽에 섞은 후, 밭에서 키운 파와 풋고추를 썰어 물이 빠진 열무와 함께 버무린다. 국물이 자작한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한다. 쌉싸름한 김치를 선호하는 가족을 위해 조미료는 첨가하지 않는다. 찹쌀죽이 쓴맛을 죽이고 부드럽고 달큰하게 김치를 익혀 갈 것이다. 남편은 열무김치를 좋아한다. 엄마가 해주던 맛을 씁쓸한 김치에서 찾는가 보다. 이 맛이야! 하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열무엔 유익한 성분이 많다. 동의보감에도 오장에 이롭고 나쁜 기운을 씻어준다고 쓰여있다. 비타민A, C를 비롯해 베타카로틴, 인삼의 주성분인 사포닌을 다량 함유하고 풍부한 식이섬유는 다이어트에 좋고 소화효소가 들어 있어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해준다고 한다. 맛은 씁쓰름하지만 쓴 약이 몸에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풀빛으로 물든 손톱이 검은색으로 흉하지만, 김치가 되어 통에 담긴 텃밭의 소산물이 대견하다. 마늘 빼고 모든 재료가 밭에서 나왔다. 다음엔 물김치를 만들어야겠다. 보리밥에 고추장 넣고 비벼 먹을 생각하니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역시 여름엔 열무김치다. 입맛이 확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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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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