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베르나 델 알라바르데로 (Taberna del Alabardero)
▶ 마드리드 왕궁의 품격, 워싱턴 식탁으로 오다

마드리드 왕궁의 품격을 품은 타베르나 델 알라바르데로.
스페인을 거닐며 깨달은 것이 있다. 그곳 사람들은 성당보다 광장에 오래 머물고, 박물관보다 식탁 위에서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식사는 허기를 채우는 일상이 아니라, 와인 한 잔에 삶과 역사를 실어 보내는 축제다. 음식은 문화요, 식탁은 곧 삶이 펼쳐지는 무대다.
워싱턴 D.C. 한복판, 그 뜨겁고도 고결한 스페인의 정서를 가장 완벽하게 옮겨놓은 공간이 있다. ‘타베르나 델 알라바르데로’.
1974년 마드리드 왕궁 맞은편에서 태어난 이 식당은 스페인 왕실과 궤를 함께해 왔다. ‘알라바르데로’는 왕궁을 지키던 근위병을 뜻한다. 왕가(王家)의 품위를 식탁 위에 지켜내겠다는 고집스러운 이름이다. 1989년 워싱턴에 닻을 내린 후, 이곳은 외교관과 정치인, 문사들이 모여드는 스페인의 민간 대사관이 되었다. 벽면에 걸린 국왕 부부의 사진과 친필 사인은 공간의 정체성을 조용히 증언한다.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또 하나의 마드리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하얀 식탁보 위로 떨어지는 샹들리에의 아늑한 불빛, 서늘할 정도로 정갈한 기물들. 실내에는 페르시아적 풍요로움을 닮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그림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고, 별실 ‘아랑후에즈’에는 스페인의 혼을 담은 대작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곳은 맛을 파는 식당이기 전에, 서사를 품은 작은 미술관이다. 예술은 벽을 장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식사의 품격으로 완성된다.
접시 위로 스페인의 풍경이 차례로 오른다. 안달루시아식 오징어 튀김은 바삭한 기분 좋은 마찰음 뒤로 바다의 신선함을 안겨주고, 맥주 소스를 졸여낸 닭구이는 감미로운 촉촉함으로 혀를 감싼다. 숯불 향을 머금은 양갈비와 고소한 버섯 크림 리소토의 조화는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깊은 여운을 빚어낸다. 가벼움 없이 꽉 찬, 완성도 높은 미학적 한 끼다.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이 숨 쉬는 아랑후에즈 룸. / 보테로의 작품이 식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 고전적인 실내가 왕실 레스토랑의 품격을 더한다. / 안달루시아식 오징어 튀김과 맥주 소스 닭구이, 숯불 양갈비. (왼쪽위부터 시계방향)
붉은 루비빛의 스페인 와인이 와인잔을 따라 부드럽게 넘실거릴 때, 접시 위의 요리들은 비로소 제 언어를 얻는다. 숯불의 스모키한 향과 진한 오크 향이 혀끝에서 얽히며 만들어내는 묵직한 울림은 마치 오래된 스페인 시 한 구절을 음미하는 듯한 착각을 부른다. 붉은 벽돌과 묵직한 목재 가구가 자아내는 아늑함 속에서, 식탁 위에 놓인 기물들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마저 세련된 클래식 소나타의 일부처럼 유연하게 공간을 채워나간다.
음식의 깊이만큼이나 인상적인 것은 매끄러운 정적을 지켜주는 서비스다. 과한 기색 없이, 손길이 필요한 순간에만 선선히 다가오는 배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손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러한 세심함은 계산서를 받아 드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계산서에 20%의 봉사료가 미리 포함되어 나오므로, 이중으로 과한 팁을 얹을 필요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 된다.) 덕분에 워싱턴의 분주함은 아득해지고 마드리드의 오래된 레스토랑에 앉아 한가로운 오후를 건너는 착각에 빠진다.
좋은 식당은 맛을 넘어 한 나라의 역사와 예술, 그 땅의 숨결을 접시 위에 담아낸다. 타베르나 델 알라바르데로는 왕실의 절제된 유산과 정통 요리, 그리고 예술의 향을 지그시 벼려낸 공간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었다. 마드리드 왕궁으로 떠난, 가장 눈부신 여행이었다.

마드리드 왕궁을 지키는 알라바르데로 근위병. 식당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상호명: Taberna del Alabardero
가격대: $35 -$75
주소: 1776 I St NW, Washington, DC 20006
전화: (202) 429-2200
추천 메뉴: Lamb chops, Crusted Sea Bream Fillet, Andalusian-style calamari
주차: Penn Parking Garage(월~금 오후 4시 이후, 주말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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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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