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튀르키예(옛 터키) 동부는 고대로부터 아르메니아 땅이었다. 아르메니아 민족들은 그곳에서 그들만의 유구한 역사를 일구고 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꽃피웠다. 그래서 그곳은 수많은 아르메니아 정교회와 수도원이 있었다. 아르메니아는 서기 301년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이다. 서기 1세기경 예수 그리스도의 12 제자 중 두 분인 다대오와 바돌로메가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곳이라고 해서 사도교회 혹은 아르메니아 정교회라고 부른다. 이토록 긴 역사를 지닌 기독교 국가이지만 같이 섞여서 살기도 하고 이웃 나라이기도 한 이슬람이 국교인 오스만 튀르키예 제국과 쿠르드족에 의해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약 120만에서 150만 명 되는 사람들이 무참히 대학살(Genocide)을 당했다.
그중에서도 옛 아르메니아 국토였던 현 튀르키예 동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기독교인 말살 정책이 이루어졌는데 그중에 한 곳이 악다마르 섬에서의 참혹한 학살이었다.
악다마르 섬에는 10세기 초에 세워진 성십자가 대교회(Cathedral of the Holy)와 수도원이 있었는데 수도원은 1915년 학살 당시 파괴되었고 교회는 수십 년간 폐허가 된 채 남아 있었다. 빼어난 건축미와 성경 속 이야기를 석조 외벽에 조각해서 넣은 것으로 인해 기독교 미술사에서도 걸작품으로 꼽히는 고풍스러운 교회는 그 후 튀르키예 군인들의 사격장으로 사용되면서 교회 외벽은 총탄 구멍이 많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교회와 수도원은 학살 당시 오스만 군대에 의해 수난과 약탈을 당해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 안에 그려진 성화들은 벗겨져있거나 훼손할 때 생긴 자국으로 보기 흉하게 얼룩져 있었다. 그러다가 사격장이요 아랍인들의 유흥 장소로 쓰이던 그곳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잠재 등록되면서 튀르키예 정부가 약간의 보수만 한 채 ‘악다마르 기념물 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나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의 순교지를 방문하기 전 그 당시 부모와 형제들, 동족들의 살해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4세 소녀 오로라 마르다가 쓴 책‘짓밟힌 아르메니아'를 먼저 읽었다. 그 책 속에 나오는 학살 장면과 본인도 어린 소녀였지만 그 역시 몹쓸 짓을 당했고 동족들의 학살 장면을 훗날 미국에 와서 너무도 생생히 증언해 주었다. 그 끔찍한 장면들은 읽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끌어내려졌던 교회의 십자가는 다시 세워졌지만 교회 안은 아무것도 없음의 ‘Empty'였다. 천년동안 수도자들의 기도와, 영성의 찬송 샤라칸이 끊이지 않았을 그 성스러운 제단 위에는 어머니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화 액자만 있었다.
그 제단 앞에 내가 섰다. 그리고 ‘His name is Wonderful Jesus my lord'를 불렀다. 웅장한 울림이 텅 빈 교회 안을 가득 채울 때 내 가슴에도 눈 이슬이 소리 없이 내렸다. 꽃나무들 밑에는 고약한 비바람이 왔다 갔는지 피지도 못한 채 떨어진 꽃 몽우리들과 꽃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
또 한 곳을 갔다. 대 학살 당시 강에다 던져버린 시체들이 강 폭이 좁은 곳에 쌓여 물길이 막히자 물이 우회해서 흘러갔다고 하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이었다. 그 당시 튀르키예 정부에서는 시신들로 인해 악취고 나고 전염병이 돌자 시체가 쌓여 만들어진 댐을 폭파시켜 물길을 텄다고 한다.
유프라테스 강 유람선에서는 ‘The Lord's Prayer'를 불렀다. 이 강에 던져진 시신들이 페르시아만 바다 어딘가로 떠내려갔을 것을 생각하며.
그렇게 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르메니아인들의 트라우마와 상처는 아물지 않고 대물림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얼마 전 우연히 만난 아르메니아 사람에게 악다마르 섬 이야기를 꺼냈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곳의 주민이었던 자기의 조부모와 친척들이 그 섬에서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생생히 들려주었다. 그 아내 역시 흥분된 어조로 증언을 해주었다. 다른 지역에 살던 윗대 선조들이 그 당시 모두 학살되었다고 하면서 예르반에 있는 학살 박물관을 꼭 가보라고 권했다. 자기는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아르메니아 인이지만 자기의 고향은 친척들이 살던 악다마르 섬이라고 하면서 옆에 있던 아들이 그 할아버지의 4대손이라고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학살 장소에서 불렀던 두곡의 성가곡을 영어로 불러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보았다. 노래가 끝난 후 내 손을 꽉 잡는 붉어진 얼굴에서 백 년 동안 멈추지 않고 흐르는 후손들의 눈물을. 튀르키예가 제노사이드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가 없는 한 아르메니아 인들의 아픔과 상처는 끝내 치유되지 않는 현재 진행형일 것이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때 세계 최초의 제노사이드라고 인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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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실 시인 / MD 미주 한국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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