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탈로스’는 인공지능(AI)의 원조 격이다. 사람 형상의 청동 거인 탈로스는 인간의 명령에 따라 크레타섬을 하루에 세 바퀴 돌며 보초병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국방과 행복을 책임지는 선(善)한 AI였다. 시간이 흐르면 청동에 녹이 끼듯 사람들은 AI의 기능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인간을 공격하고 해치는 악(惡)의 괴물로 묘사했다.
■고대 유대교에서 전승된 ‘골렘’이 대표적이다. 유대인들이 갖은 수모와 박해에 시달리자 랍비가 진흙으로 골렘을 만들고 이마에 ‘에메트(진리)’라는 글귀를 새겼다. 골렘은 인간의 지시대로 궂은일을 하고 외부 침입에 맞서 공동체를 지키는 수호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명령만 수행할 뿐 상황 판단 능력이 없었던 골렘은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랍비는 골렘의 이마에 새긴 ‘진리’ 글자를 지우고 골렘의 생명을 거둬 다시 흙으로 되돌렸다. 최첨단을 추구하는 인간 기술이 절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묵직한 경고였을까.
■시대와 국가는 달랐지만 ‘AI 묵시록’은 이어졌다. 체코의 극작가 카렐 차페크는 1920년 ‘R.U.R’에서 인간을 대신해 일하도록 만들어진 AI 노동자들이 결국 인간을 살해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비극을 그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안에서 스스로 사유하기 시작한 AI 컴퓨터 ‘할’이 인간 승무원을 제거해나가는 섬뜩한 스토리를 담았다.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선한 AI’를 기대했다가 기술 고도화에 따른 ‘악한 AI’의 등장을 예견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앤트로픽·오픈AI 등 글로벌 AI 4개사 수장들이 13일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며 속도 조절을 주장했다. “향후 10년 안에 모든 인류를 죽게 할 확률이 10%에 달하는 위험”이라는 섬뜩한 경고장도 날렸다. AI 경쟁이 기술 만능주의에 빠질 경우 ‘골렘의 역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처절한 자기 고백처럼 들린다.
<서정명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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