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좀처럼 안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안개는 높이 솟지 않고 얕은 파도만큼 일렁거리며 수면 위로 퍼져나갔다. 바다 건너 컨테이너항구도 신공항이 들어설 가덕도도 기초 없이 허공에 떠 있는 듯 보였다. 부산 서쪽 다대포해수욕장, 여행객은 그렇게 몽환의 시간 속 신기루를 걷는다.
■서핑과 노을 명소 다대포해수욕장
부산의 여름 바다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해운대와 광안리를 떠올린다. 송도해수욕장을 포함해 도심에 위치한 3개 해변 말고도 기장의 임랑, 일광, 송정, 그리고 서쪽 끝 다대포해수욕장까지 부산에는 7개 대표 해변이 있다.
다대포는 투명한 쪽빛을 자랑하는 여섯 해변과 많이 다르다. 썰물 때는 바다 멀리까지 모래사장이 드러난다. 서해안처럼 물이 쏙 빠지지도 않고 질펀한 갯벌도 아니다. 찰랑거리는 파도를 밟으며 끝없이 걸을 수 있는 해변이다. 물살 따라 움직이는 고운 모래 알갱이가 발가락 사이로 흐른다. 아이나 어른이나 젖은 바닥에 철썩 주저앉아 모래장난을 즐긴다. 낙동강과 남해안이 만나 드넓은 모래밭을 만든 곳, 그곳이 다대포다.
부산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던 다대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하철 1호선 다대포해수욕장역이 바로 붙어 있어 접근이 편한 데다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라 외지 여행객이 제법 찾는다. 특히 해가 질 무렵이면 바다와 하늘이 동시에 붉게 물들어, 일몰 사진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낮에 다소 한가하던 해변은 저녁이 되면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사람들로 붐빈다.
얕은 모래해변이 끝나는 곳부터는 서퍼들 차지다. 파도가 거칠지는 않지만 파장이 길게 이어져 서핑 초보자들이 특히 선호하는 바다다. 해변 바로 옆 습지에는 ‘고우니생태길’이 조성돼 있다. 다양한 수서 동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덱 산책로가 바다로 이어진다.
서부산의 보물이 된 다대포해수욕장도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 해변 입구에 ‘다대포 매립 백지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91년 건설교통부는 다대항에 목재전용부두를 건설하기 위해 ‘공유수면 매립기본계획’을 세웠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1996년 계획을 철회했다. 2000년에는 해양수산부가 매립 계획을 들고 나왔다. 2011년까지 다대포부두를 건설하는 계획안에 해수욕장 매립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에는 환경단체 주도로 범시민 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서명운동과 시장실 점거 농성, 상경 시위까지 반대의 강도는 더 세졌고, 결국 2002년 6월 매립 계획은 백지화됐다.
사라질 뻔한 해수욕장 일대는 다대포해변공원으로 정비해 올해 한국관광공사에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했고, 부산을 대표하는 축제의 장이 됐다. 지난 26일부터 28일까지 일대에서 부산바다축제가 열렸다. 해변에 다양한 먹거리 부스와 테이블(다대포차)이 차려지고, 풀파티 공연이 펼쳐져 다대포를 한여름 밤의 낭만으로 채웠다. 일부 프로그램은 고르지 못한 날씨 때문에 뒤로 미뤄졌다.
■안개도 잠드는 곳, 몰운대
휴가철 다대포해수욕장이 외지 여행객 차지인 데 반해 바로 옆 몰운대는 주민들의 피서지다. 아침 일찍부터 돗자리를 챙긴 주민들이 하나둘씩 몰운대 숲길로 슬그머니 사라진다. 해변 동쪽 끝에서 바다로 약 1.5km 길쭉하게 돌출된 지형이다. 넓고 평탄한 탐방로를 아름드리 솔숲이 감싸고 있다.
몰운대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구름에 잠긴 곳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는물안개가 잦다. 특히 비가 오고 나면 반도의 머리 부분만 드러나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인다. 예부터 풍광이 빼어나 태종대, 해운대와 함께 부산의 삼대로 불려왔다.
천천히 솔숲을 걸어 탐방로 중간쯤에 다다르면 다대진 동헌이 세워져 있다. 다대진성 관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한 건물로, 1970년 다대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다시 탐방로를 따라 약 600m를 더 가면 정운공순의비가 있다. 비의 주인공 정운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의 우부장으로 부산포해전에서 적탄을 맞고 순절한 인물이다.
순의비는 정조22년(1798) 8대손 정혁이 다대포첨사로 부임해 세웠다. 정운공이 수군 선봉으로 몰운대 아래서 왜적을 만났을 때 몰운의 운자가 자기 이름의 운과 음이 같다 하여 이곳에서 죽을 각오하고 분전하다 순절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몰운대 입구에서 정운공순의비까지 왕복하면 넉넉잡아 1시간이면 충분하다. 동쪽 끝자락 화손대까지 다녀오자면 그만큼 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다소 경사가 있지만 그늘 짙은 오솔길이어서 걷는 재미가 있다. 걷다 보면 앞바다의 쥐섬, 동섬, 모자섬과 암초 위 작은 등대가 그림처럼 모습을 드러낸다. 정운 장군이 최후를 맞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화손대 가는 숲길에는 사스레피나무가 빼곡하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꽃에서 뿜는 방향 물질이 달착지근한데, 사람에 따라서는 살짝 구린내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탐방로 곳곳에 공기정화, 피부진정, 살균에 효과가 있으니 안심하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천연방향제인 셈이다. 습한 여름이지만 벌레와 모기가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한껏 넓어진 강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한데, 중간에 길쭉하게 휘어진 섬들이 여럿 있다. 도요새의 쉼터 도요등, 백합조개가 풍성한 백합등, 맹금류가 많이 서식하는 맹금머리등, 나중에 형성된 신작도(신자도), 가장 큰 장자도, 큰 말처럼 생긴 대마등과 진우도가 띠처럼 둥둥 떠 있다. 진우도는 한국전쟁 직후 어느 목사가 50명의 고아를 데리고 들어와 진우원이라는 고아원을 운영했던 섬이다. 1959년 사라호 태풍 때 섬이 잠겨 모두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연이 서려 있다.
‘등’은 땅이 굳어 섬으로 안정화되기 전의 모래무지를 일컫는다. 등이나 섬이나 갈대가 무성해 푸릇푸릇하다. 수면에 하얗게 햇살이 부서지고 초록 섬에 물안개가 피어올라 사뭇 이국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다만 가장 하류의 도요등에는 풀이 적고 모래가 드러나 있다. 도요등을 기준으로 바다에는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드는데, 안쪽 강물은 한없이 잠잠하다. 파도를 막아주는 울타리 섬이다.
바다와 연결된 약 650m 길이의 반듯한 수로 양쪽 집들이 알록달록하게 외관을 단장했고, 물위에는 작은 어선과 낚싯배가 열을 지어 정박해 있다. 허름한 어촌마을 집들이 카페나 소품가게로 변해 여행객을 맞는 곳이다. 입구의 부네치아선셋전망대 카페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 모래사주와 바다 건너 가덕도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인근에 낙동강 하구의 상징 을숙도가 있다. 이름처럼 맑고 깨끗한 환경으로 새들의 낙원이라 불리는 섬이다. 섬 전체가 생태공원으로 조성돼 있는데, 남북 길이 4km가 넘어 걸어서 돌아보기에 쉽지 않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부근에서 30분마다 무료 전동탐방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끝자락 전망대에서 한 차례 쉬는데, 탐조대 앞으로 아미산전망대에서 본 모래섬이 신기루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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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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