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 날 땅 없이 들어찬 건물, 차도 변 좁은 공간마저 지운 주차 행렬… 서울 원도심의 통상적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아 그물 같은 골목길마다 제각각의 모습으로 지어진 집이 빼곡하다. 뒤늦게 개발된 지역은 땅으로는 모자랐는지 하늘마저 뒤덮을 기세로 아파트가 솟아 있다.
이런 회색 풍경 사이로 첩첩산중에 있을 법한 절벽이 보인다. 종로구 창신·숭인동 일원, 반경 300m 남짓한 구역엔 깎아지른 절벽이 한 곳도 아니고 대여섯 곳이나 있다. 주민에게는 일상 풍경이지만 대부분은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도시 속 비경이다. 짧게는 백여 년, 길게는 수백 년간 쌓인 아픔이 서린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한국은행, 서울시청, 조선총독부 등 당대 가장 중요한 건축물을 짓기 위해 돌을 캐 간 채석장 절개지다. 그보다 앞서 비운의 왕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가 출궁 후 여생을 보낸 한이 서린 능선이다. 눈은 황홀하지만 가슴은 아린 다크투어리즘(비극적인 역사관광) 동선이다.
조선총독부, 한국은행, 서울역 쌓아올린 ‘경성의 주춧돌’
채석장 절벽은 창신2동과 창신3동의 경계선에서 숭인1동까지 분포한다. 해안가 만(灣) 지형마냥 높은 능선 방향으로 움푹 파여 있는 절개지가 여섯 곳이다. 각 절개지 주변 사방으로 각양각색의 건물이 들어서 알아채기 어렵지만 이들은 사실 하나의 산이다. 본래 한양도성 성곽길로 널리 알려진 낙산(124.3m)의 일부인 것. 낙산 면적의 대부분이 주거지 등으로 개발돼 육안으로는 알기 어렵지만 지형정보를 제공하는 지도로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한양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은 예로부터 풍경이 수려해 양반들이 활터와 별장을 지었다. 단단한 중생대 대보 화강암으로 구성돼 빛깔이 신비롭고 형태가 기묘했다고 전해진다. 이 화강암 덕분에 조선시대 내내 한양 최고의 명승지 중 하나로 꼽혔지만 조선 후기 들어 운명이 뒤바뀌었다. 강도가 높고 석질이 우수한 화강암 공급처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 사대문 밖이고 험준한 산이 아니었기에 수도의 채석장으로 적합했다. 본래 조선 왕조는 풍수를 해한다는 이유로 도성 내부나 근처에서는 채석을 지양해 왔지만, 1865년(고종 2) 경복궁을 중건하며 불문율이 깨졌다. 광화문의 선단석(아치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돌), 경회루의 기둥 등을 낙산의 돌로 만들었다.
20세기 들어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시작되자 낙산은 경성의 주춧돌이 됐다. 1912년 조선은행 본점(옛 한국은행 본관·현 화폐박물관)을 시작으로 1925년 경성역(옛 서울역·현 문화역 서울284), 1926년 경성부청(옛 서울시청·현 서울도서관)과 조선총독부까지 낙산 채석장의 돌로 지어졌다. 일제가 심혈을 기울인, 당대 최고 건축물이 죄다 낙산 자락에서 발원한 셈이다. 일제강점기 동안 경성부 직영 채석장으로 운영돼 수많은 석조 건물을 건축하는 데에 동원됐다. 경성이 화려해질수록 낙산은 깎여갔다.
해방 후에야 낙산 채석은 중단됐고, 1960년대 들어 서울시는 주 채석지를 중랑구 용마산으로 옮겼다. 현재는 이곳도 용마폭포공원이 조성돼 서울 시내 아름다운 절벽 명소로 탈바꿈했다. 채석공이 떠난 낙산 자락에는 피난민과 이주민이 몰려들었다. 절개지 주위에 판잣집이 하나둘 들어서며 자연스레 창신·숭인동 구역이 형성됐다. 세월이 흘러 판잣집은 벽돌집과 콘크리트 건물, 또는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현재의 독특한 풍광이 완성됐다.
동대문역 방면에서 걷기 시작한다면 창신동 595-4번지 일대의 절벽을 가장 먼저 마주한다. 창신2동의 일명 ‘돌산마을’ 혹은 ‘절벽마을’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절벽 규모는 작은 편이지만 단면이 다채로워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창신동 권역의 5개 절개지 중 가장 관람하기 수월한 지점이기도 하다. 다른 지점들은 자원순환센터, 아파트, 학교 등 시설이 절벽 경관을 일부 가리지만 돌산마을 절벽은 평범한 저층 주택가 사이에 있다. 절벽 상부에서 하부까지 이어지는 계단이 있어 근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
돌산마을 절개지에서 북쪽으로 걷다보면 ‘채석장전망대 카페낙타’가 있다. 분위기 좋기로 이름난 카페가 절벽마을 곳곳에 숨어 있는데, 카페낙타가 원조 격이다. ‘힙’한 외형만 보고서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창신숭인 도시재생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을카페다. 숭인동 동망봉 절개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통창 전망이 훌륭하다. 숭인동을 바라보는 방면 낭떠러지가 창신3동 권역의 절벽 3개소다. 뒤집어진 ‘3’자 모양으로 큰 절개지 두 개가 맞닿아 있고, 남쪽 절개지 하부에 또 하나의 절개지가 있다.
돌산마을 절개지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100m쯤 내려가면 ‘산마루 놀이터’가 있다. 산마루 놀이터 역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진 아동 놀이·문화시설로 육각형과 나선으로 이뤄진 구조가 인상적이다. 일대에는 1889년 창건된 안양암이 있다. 낙산의 본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암반에 기대어 지어졌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 불화·불상 및 사찰 건물이 다수 보존돼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눈물 서린 동망봉
숭인1동으로 넘어가면 동망봉 서편에 거대한 절벽이 보인다. 폭만 200m가 넘어 창신·숭인동 일대 절개지 중 최대 규모다. 시원하게 펼쳐진 암벽이 먹을 흘려 그린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절벽 너머로 성북·동대문·성동구 일대의 아파트 단지와 고층 건물이 솟아 있다. 창신동 절벽이 옛 서울 한복판에 깎아놓은 조각 같다면 숭인동 절벽은 건물 숲을 등진 병풍 같다.
절벽이 절개되기 전 이곳에는 영조의 친필이 새겨져 있었다. 비운의 왕 단종의 정비 정순왕후가 매일 이 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유배지 영월을 바라보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을 복위시킨 영조가 1771년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기 위해 친히 ‘동망봉(東望峰, 동쪽을 바라보는 봉우리)’ 세 글자를 내려 바위에 새기도록 했다. 선대 왕 부부의 비극적인 사랑이 영원토록 기억되도록 새겼다고 하는데, 일제의 채석 작업으로 사라져 버렸다. 현재 동망봉에는 정순왕후의 넋을 기리는 정자 ‘동망각’과 기념관 ‘숭인재’가 지어져 있다.
동망봉 일대는 정순왕후 관련 유적지가 여럿이라 테마 동선으로도 묶인다. 동망봉 북쪽에는 922년(고려 태조5) 창건된 청룡사가 자리한다. 단종이 폐위돼 출궁한 정순왕후는 사찰 후원의 초가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동망봉 정상에서 도보로 1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다. 영조는 동망봉 암각을 새기기에 앞서 청룡사에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를 새긴 비석을 내렸다. ‘정업원’은 ‘왕실의 여인이 출가해 불도를 닦은 절’을, ‘구기’는 ‘옛 터’를 뜻한다. 이 비석은 현재까지도 사찰 부지에 보존돼 있다.
청룡사에서 북서쪽으로 350m 이동하면 쌍용아파트 단지 옆에 ‘비우당’이라는 초가집이 보인다. 조선 초기 청백리 유관의 생전 가옥을 복원한 것인데, 후원에 마른 우물이 하나 있다. 우물 왼편 암반에 ‘자주동천(紫芝洞泉)’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우물 물에 옷감을 담그면 고운 자주빛으로 물들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정순왕후가 이 우물에서 염색일을 하며 야인으로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낙산 권역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종로를 건너면 또 다른 정순왕후 유적지가 있다. 마을 여인들이 정순왕후를 가엾게 여겨 채소 등을 모았다는 ‘여인시장 터’, 단종이 정순왕후와 영영 이별한 영도교다. 최북 자주동천에서 최남 영도교까지 도보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창신·숭인동 일대는 최근 때아닌 호황을 맞아 국내외에서 관광객이 몰린다. 비즈, 젤리슈즈 꾸미기 등 DIY(Do it yourself, 직접 만들기) 유행 덕분에 90년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동대문종합시장, ‘말랑이’(촉감을 즐기는 작은 장난감) 열풍에 발 디딜 틈 없다는 창신동 문구완구시장은 현시점 최고의 ‘핫플’이다. 동묘시장도 1020 세대 방문이 늘어 지역 유동인구는 대폭 늘고 연령대는 낮아졌다. 지난해 세계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에 등장한 낙산 성곽길은 방한 외래 관광객에게 ‘필수 코스’가 됐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를 마무리하고 싶다면 관광하기에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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