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양쪽에서 최근 벌어진 두 사건은 같은 문제를 가리킨다. 영국에서는 점잖은 키어 스타머 총리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인물로 여겨지는 앤디 버넘 의원이 자신의 신조를 ‘기업 친화적 사회주의’라고 내세우고 있다. 뉴욕에서는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눈에 띄는 승리를 거두며 급진 좌파가 항의를 권력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아낸 듯한 모습을 보였다.
먼저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 한다. 좌파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시 외 지역의 많은 예비선거에서는 중도 성향 민주당 후보들이 승리했다. 뉴욕시 외곽의 경합 선거구에서는 참전 용사 케이트 콘리가 손쉽게 승리했다. 그러나 특정한 형태의 자유주의는 에너지와 자신감, 그리고 자신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성을 잃어가고 있다.
에이드리언 울드리지의 신간 ‘혁명적 중도’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자유주의의 역사를 추적한 뛰어난 지성사의 역작이다. 이 책에서 울드리지는 자유주의가 한때 정치에서 가장 급진적인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자유주의는 세습 특권, 독점 권력, 검열, 귀족제도, 성직자 권위, 폐쇄적 길드 체제를 공격했다. 자유주의는 기득권의 이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득권을 향해 휘두르는 공성추였다.
그러나 오늘날 자유주의는 권력과 동일시되고 있다. 거대한 대학들, 재단들, 언론기관들, 대기업들, 그리고 관료 조직들이 그것이다. 울드리지는 이러한 변화가 두 가지 심각한 실패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는 수동성이다. 현대 자유주의는, 적어도 1990년대 이후로는, 자유시장과 자유로운 개인을 찬양해 왔다. 실제로 이것은 경제생활과 개인생활 모두를 규제 완화한 뒤, 그 결과를 자유의 대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시장에서는 기업 집중화와 불평등이 통제되지 않은 채 확대되도록 방치했다. 개인생활에서는 특정 행동들이 사회적으로 파괴적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자유주의자들이 꺼리게 되었다.
그 결과는 자유주의적 숙명론이다. 사람들이 중독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데도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흔히 주택 문제로 설명한다. 수백만 명이 비만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자유주의자들은 소비자들을 가공식품에 중독시키는 기업들을 비판하기보다 신선하고 건강한 식료품 접근 취약 지역’을 탓하는 데 더 익숙하다. 소셜미디어 기업들 역시 소비자들의 주의를 대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울드리지는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의 부활을 촉구한다. 이 표현은 현대인의 귀에는 거슬릴 수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사회는 개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할 뿐 아니라 개인의 책임도 요구해야 한다. 또한 자유는 국가에 의해서만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중독, 독점, 범죄, 무지, 의존에 의해서도 파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더 진정한 자유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게 하거나 불평등을 확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경쟁이 약자가 강자에게 도전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건강한 시장이란 네 개의 기업이 조용히 산업을 나눠 가진 뒤 변호사와 로비스트, 알고리즘을 동원해 경쟁자들의 진입을 막는 시장이 아니다. 건강한 시장은 새로운 기업이 성장할 수 있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으며, 노동자가 이동할 수 있고, 기존 강자도 실패할 수 있는 시장이다.
울드리지가 지적하는 두 번째 실패는 더 불편하다. 이는 자유주의자들 자신의 지위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능력주의를 믿는다. 역사적으로 이는 자유주의의 가장 고귀한 대의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은 출신, 인종, 카스트, 계급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능력주의 엘리트는 자신만의 귀족 계급으로 굳어졌다.
엘리트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정의를 지지하지만, 동문 자녀 입학 우대 제도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사다리를 올라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자신들이 사는 녹지 많은 고급 주거지역에 더 많은 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반대한다. 그들은 개인의 능력을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개인의 성품보다 집단 정체성으로 판단하는 거대한 다양성 관료체계를 만들어냈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초·중·고 교육 분야다.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인 정치는 아이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노조든, 관료조직이든, 교육위원회든, 대학 학과든, 미국의 아이들을 실패로 내몰면서 자신들의 권력만 키우는 모든 제도를 공격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과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힘을 얻는다.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싸워줄 누군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들이 내놓는 해답은 잘못되었을 수 있다. 좌파는 계급투쟁, 보호무역주의, 국가 통제를 제시하고, 우파는 보호무역주의, 민족적 원한, 인종적 향수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기득권에 맞서 싸울 의지가 있는 외부인처럼 들린다. 또한 자유가 혼란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자유주의 위기의 출구는 자유주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의 급진적 정신을 되찾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한 번 독점과 세습 특권, 폐쇄적 체제와 조작된 게임을 증오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진정한 경쟁, 진정한 능력주의,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옹호해야 한다. 기업 권력이 시장을 짓밟을 때는 그것에 맞서고, 정부 권력이 내부자들을 보호할 때는 그것에 맞서며, 집단 정체성을 개인의 존엄성보다 우선시하는 관료체계를 만들어내는 문화 권력에도 맞서야 한다.
울드리지가 주장하듯 중도는 단순히 좌파와 우파 사이의 중간 지점이어서는 안 된다. 중도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혁명적이어야 한다. 자유주의의 위대한 약속은 사람들이 자유 속에서 방치된 채 쇠락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번영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와 규칙, 그리고 책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는 굳어버린 권력에 대한 반란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런 반란이 될 때에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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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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