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고 오페라를 진부한 극음악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라도 LA 오페라의 2025-2026 시즌 마지막 작품인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를 보았다면 생각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도 한인 성악가들의 활약은 반가웠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기존 오페라의 틀을 과감히 벗어난 연출이었다. 오페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통 오페라 극장의 객석에는 우아한 귀부인과 신사들이 주로 눈에 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개성 넘치는 차림의 관객들 사이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평소 오페라 공연장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모차르트의 고전 오페라였지만 아이들은 지루해하기는커녕 눈을 반짝이며 무대에 빠져들었고, 어른들 역시 예상치 못한 연출에 놀라면서도 어느새 동화 속 세계를 여행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번 프로덕션은 연출가 바리 코스키(Barrie Kosky)와 영국의 애니메이션 극단 1927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무성영화와 애니메이션, 라이브 공연을 결합한 독창적인 무대는 이미 세계 여러 오페라 극장에서 큰 사랑을 받아왔다. 참고로 극단 이름 ‘1927’은 최초의 유성영화인 [The Jazz Singer]가 개봉한 해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성영화와 영화 초창기 시각예술에 대한 이들의 애정이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무대는 마치 거대한 팝업북 같았다. 흑백과 컬러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상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었고, 정지된 삽화 같던 장면은 어느 순간 애니메이션으로 생명을 얻었다. 배우들은 벽에 난 작은 창문 속에서 등장해 노래했고, 회전문처럼 열리고 닫히는 공간을 통해 어느새 다른 장면으로 이동했다. 관객은 공연을 본다기보다 한 권의 그림책을 직접 넘기며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해인 1791년에 완성한 오페라다. 왕자 타미노가 밤의 여왕의 딸 파미나를 찾아 나서고, 새잡이 파파게노와 함께 여러 시련을 거치며 사랑과 진실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왕자와 공주, 마법의 피리와 종, 괴물과 시련이 등장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성장과 사랑, 그리고 깨달음에 대한 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재해석이었다. 파파게노는 무표정한 얼굴과 익살스러운 몸짓으로 웃음을 자아냈던 무성영화 스타 버스터 키튼(Buster Keaton)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등장했고, 파미나는 192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단발머리 영화배우 루이즈 브룩스(Louise Brooks)를 닮은 세련된 여인으로 그려졌다. 악역 모노스타토스는 고전 공포영화의 원형으로 꼽히는 독일 영화 [노스페라투](Nosferatu)의 흡혈귀를 연상시키며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가장 압도적인 존재는 단연 밤의 여왕이었다. 전통적인 드레스 대신 거대한 검은 과부거미의 형상으로 등장한 그녀는 무대 전체를 장악했다. 특히 유명한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고(Der Hölle Rache)’를 부를 때 화면 가득 뻗어나가는 거미 다리는 환상적이면서도 섬뜩했다. 동화 속 마녀와 무성영화의 괴물이 만난 듯한 이 장면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이 놀라운 무대 뒤에는 정교한 기술과 치밀한 훈련이 숨어 있다. 거대한 흰색 스크린 벽에는 수많은 비밀문이 숨겨져 있고, 성악가들은 벽 뒤의 플랫폼에 올라 얼굴과 상체만 드러낸 채 노래한다. 애니메이션과 실제 배우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맞추기 위해 수개월에 걸친 연습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 결과 2차원의 영상과 3차원의 인물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세계로 융합된다. 기술적 장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마법을 의심하기 어려웠다.
230년이 넘은 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이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술피리]는 시대마다 새로운 상상력을 입고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LA 오페라의 [마술피리]는 오페라가 결코 낡은 예술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가장 오래된 예술이 가장 현대적인 상상력과 만났을 때 얼마나 자유롭고 매혹적인 경험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 무대였다.
<
손영아 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