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기온이 37도에 육박하는 폭염에 너나 할 것 없이 강물에 풍덩풍덩 뛰어든다. 유럽 전역이 살인적인 더위에 신음하고 있지만 이 도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견디기 힘든 이상기후이지만 피할 곳이 있으니 ‘재난’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이 고도(古都) 한복판에 흐르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다뉴브)강 덕분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라인강, 프랑스 파리의 센강, 영국 런던의 템스강 등 유럽 주요 도시의 강은 수질 문제로 물놀이는 언감생심, 실수로라도 물에 빠지지 않을까 염려할 판이다. 수질은 괜찮다지만 우리 한강도 안전 문제로 입수를 통제하긴 마찬가지다.
오스트리아 빈(비엔나)의 젖줄 도나우강은 시민들의 여름 놀이터다. 강변에 늘어선 돗자리와 비치타월,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줄줄이 입수하는 아이들… 도나우강의 풍경은 빈의 여름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전 세계 각국의 인파가 몰렸던 제국의 수도를 관통하는 강이라는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일 만큼 분방한 모습이다.
기후변화 탓에 해가 갈수록 유럽 도시의 여름 여행이 힘들어지고 있지만, 빈은 여전히 낭만적이다. 현지인처럼 도나우강에서의 물놀이, 한여름밤의 야외공연, 포도밭에서 즐기는 시원한 화이트 와인 등을 즐기다 보면 땀과 함께 흘려보냈던 여름 낭만이 어느새 돌아온다.
남녀노소 도나우강에 풍덩, 백조도 모른 척
오스트리아 빈 19지구 누스베르크 일대 포도밭에서 바라본 도나우강. 왼쪽 더 푸른 물줄기가 신도나우, 오른쪽 물줄기가 도나우 본류다.
남의 나라 수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강물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낯선 행동이라 부자연스럽고 시선도 신경 쓰인다. 그러나 잠시 불안을 가라앉히고 도나우강변을 몇 번 둘러보면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걸 깨닫는다. 빈에서는 어린이, 백발 노인 할 것 없이 스스럼없이 강물 수영을 즐긴다. 백조가 유영하든 물고기가 헤엄치든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수면을 깨트린다. 일상적인 소동인지 백조 무리는 물보라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도나우강 수계는 크게 넷으로 나뉜다. 본래 도나우강은 갈래갈래 수많은 물길로 찢어져 주기적으로 범람했다. 1972년부터 강변을 정비하고 저수로를 개발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우리의 한강정비사업과 비슷하다. 도나우 본류를 따라 21㎞에 달하는 인공섬이 제방 역할을 하고, 이 제방 안쪽으로 ‘신도나우’가 있다. 길이와 이름 때문에 강처럼 느껴지지만 물길이 통제된 인공호수, 저수지에 가깝다. 도나우 본류의 수량이 넘칠 때 물을 저장하는 용도다.
도나우 본류와 이와 붙어 있는 신도나우 외에도 ‘구도나우’와 ‘도나우 운하’가 있다. 정비사업 당시 메꾸지 않고 남긴 두 지류인데, 각각 강의 북쪽과 남쪽으로 호를 그리며 흐른다. 도나우 운하는 빈 도심 중심가를 접한다. 이 운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도나우는 전부 시민의 물놀이장으로 쓰인다. 신도나우는 흐르지 않아 물길이 잔잔하고 물이 특히 맑아 수영하기 최적이다.
구도나우에서는 보트를 저렴하게 대여할 수도 있다. 한 척 빌려 유유히 강을 유람하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으면 그대로 입수한다. 배와 사람 할 것 없이 물을 떠다니지만 위험하다는 느낌이 없다. 선박이 전부 저속 전기보트나 인력으로 움직이는 보트이기 때문이다. 굉음을 내며 물길을 가르는 모터보트는 단 한 척도 찾을 수 없다. 덕분에 아이들도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긴다.
배를 타고 강을 유람하다보면 알몸으로 이용할 수 있는 ‘누드 비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체 수영에 관대한 독어 문화권답게,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오스트리아에도 제법 흔하다고 한다.
문화도시 빈 만끽할 프라터 피크닉
빈의 여름 하면 ‘프라터 피크닉’을 빼놓을 수 없다. 프라터는 본래 합스부르크 황실 사냥터였는데 1766년 황제 요제프 2세가 시민에게 개방했고 이후 공원 및 유원지로 개발됐다. 이곳에서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매해 여름방학 직전 야외 공연을 개최한다. 프라터의 상징인 대관람차 옆 노천극장에서 열린다. 입장료도 사전 신청을 할 필요도 없다. 폐쇄적인 황실의 사냥터가 시민 모두를 위한 공연장이 됐다는 점이 재미있다.
프라터 피크닉은 빈이 진정한 ‘문화의 도시’임을 경험할 수 있는 행사다. 이곳에서 문화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공연을 보러 온 시민들은 편한 옷차림에 담요를 펴고 드러눕기도 한다. 공연 중 수다는 예사. 음료 부스에서 맥주를 사 마시며 피크닉 바구니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기도 한다. 흥이 오르면 자리에서 일어나 왈츠를 추기도. 이날도 눈앞에선 엄마와 딸이 춤을 추고, 저 멀리 오른쪽에선 연인끼리 친구끼리 저마다 작은 무도회를 열었다.
공연일은 그간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비 예보까지 있던 날이라 다소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넓은 잔디밭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올해 공연은 한국계 미국인 홀리 현 최가 지휘봉을 잡았다. 2시간 30분이나 계속된 시간 동안 클래식, 팝, 성악 장르를 넘나들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길어 보였던 세트리스트는 순식간에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나마 한여름밤의 꿈을 꾼 기분이다.
시내에서 와인 생산하는 세계 유일 대도시
빈은 도시 경계 안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대도시다. 비닝거(Wieninger) 등 농장이 위치한 19구 누스베르크 언덕 일대가 유명 산지다. 도심 중심가에서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언덕에 오르면 슈테판 대성당 첨탑부터 호프부르크 궁전까지 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때문에 오스만 제국이 빈을 포위·공격했을 당시 이 언덕에 거점을 마련했다고.
언덕 일대에는 와인 농장이 여럿 있다. 이 농장들을 방문하면 ‘부셴샹크’라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부센샹크는 농장에서 운영하는 작은 선술집으로 해당 농장에서 빚은 최근 빈티지의 와인과 간단한 음식을 내준다. 1784년 농장이 직접 와인을 판매할 수 있게 되며 시작된 문화다. 당시 황제의 칙령으로 따뜻한 요리는 낼 수 없었고 찬 안주만 제공할 수 있었기에 지금도 대부분 간단한 주전부리 중심이다.
농장들은 도심 접근성이 좋아 시민들은 가벼운 나들이 삼아 방문한다. 여름을 포함해 늦봄과 초가을 사이에 인기가 많다고. 시내 맛집도 좋지만 포도밭 사이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홀짝이는 와인 한 잔이야말로 현지 감성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기자 일행도 콜드플래터(열을 가하지 않은 육류 및 치즈 모둠)와 빈을 상징하는 게미슈터사츠(Gemischter Satz) 와인을 주문했다. 게미슈터사츠는 여러 품종의 포도를 섞은 와인인데, 재배할 때부터 서로 다른 품종의 포도나무를 섞어 심는다. 병충해와 기상에 따른 흉작을 예방하기 위한 빈 지역의 지혜라고. 식사를 마치고 내리막길을 따라 인근 버스·지하철역까지 도보로도 이동 가능하다. 몸 안팎으로 느껴지는 기분 좋은 포도향에 취한다.
대통령궁 앞에 문화시설 50여 곳 밀집
여름 빈 여행은 문화 시설도 빠뜨릴 수 없다. ‘제국박물관’인 미술사 박물관과 자연사 박물관이 가장 유명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문화 시설은 무제움스크바르티어(MuseumsQuartier)다. 미술관 등 문화 시설 50여 곳이 밀집한 문화지구로 기획돼 올해로 개관 25주년을 맞았다.
이곳은 두 제국박물관과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가 정궁으로 쓰였던 호프부르크(현 대통령궁) 인근에 위치한다. 본래 황궁 마구간으로 쓰이던 건물이기 때문. 옛 마구간 건물 앞에 레오폴트 미술관과 현대미술관(mumok)이 대칭으로 마주 서 있다. 레오폴트 미술관은 백마처럼 흰 석회석을, 현대미술관은 흑마처럼 검은 용암석을 이용해 지었다.
구도심을 둘러싼 빈의 상징적 거리, 링슈트라세를 걷다가 응용미술관(MAK)에 방문해도 좋다. 1864년 개관한 오스트리아 최초의 응용예술 미술관으로 디자인, 사진, 인테리어 관련 전시가 주력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빼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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